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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Sep 22. 2021

자리비움



이토록 오랫동안 서울을 비운 것은 서울에 온 이래 처음이었다. 대단한 일로 날 찾는 사람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비움' 상태메시지도 남겨두었다.


나이가 들어서 인 건지, 코로나라는 큰 변화를 겪어서인지 요즘에 부쩍 주변의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고,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모임과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던 내게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언젠가부터 일까.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들에 온전히 시간을 쏟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코로나의 영향이기도 하다. 모두가 집콕을 하며 2.5단계를 버티던 시기. 부쩍 줄어든 모임과 약속 탓인지 매일같이 울리던 카톡도 잠잠해졌다. 며칠 정도는 ‘이러다 내가 원룸에서 죽어도 한동안 발견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매일같이 내 안부를 물어주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약속을 잡았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향 친구들을 하루 종일 만나고 돌아다니며 늦은 저녁에서야 집에 들어가고는 했다. 그렇게 이틀 정도를 집을 숙식제공처로 이용하고서는 마지막에 기차역에 갈 때에나 아빠와 시간을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혹시, 집에 붙어있는 일이 있다면 읽어야 할 책을 두, 세 권 싸갔거나 이런저런 해야 할 일들이 많다며 노트북을 들고 내려갔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 마저도 집에서는 집중이 안된다며 집 앞 카페에 갔다가 식사 시간에서나 돌아왔다.


아니, 집에서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 지금 많이 먹으면 저녁에 못 먹으니까. 뭐 그런 핑계들을 대면서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고 잔뜩 차려놓은 음식들을 절반도 손대지 않고 상을 무르곤 했다.


그랬던 것들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제와 철이 들었거나, 부모님을 이해할 만큼 나이를 먹어서이거나 아니면 코로나 때문이거나 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아, 이따금씩 친구들의 부모님의 부고가 들려오면서부터 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추석 연휴 때는 빈손으로 고향에 내려갔다. 부모님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아무런 일정 없이 일주일을 통째로 고향에서 보낸 것은 내가 서울에 올라온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날짜는 빨리 지나갔고, 반면 시간은 여유롭게 흘러갔다.


아빠가 가장 신났다. 첫째 날 아침에는 산소에 갔다 아빠와 밤을 한가득 주웠다. 낮잠을 한숨 자고 저녁에는 아빠와 머리를 맞대고 주운 밤을 밤새 깠다. 둘째 날에는 아빠 농장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배추도 뜯고 고추도 땄다. 또 낮잠을 자고는 저녁에는 고구마순 껍질을 손톱이 다 까매질 때까지 다듬었다. 이때쯤.. 매일같이 하던 일과들을 하지 않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트북도, 책도 들고 오지 않아서 별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잊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을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나니 평소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평화롭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시간들이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행복이란 거, 이렇게 쉬운 거고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는데. 나는 어떤 행복을 갖기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고 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저녁 11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했다. 양손에는 아빠와 함께 수확한 고구마와 밤이 들려있었다. 용산역 출구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부딪혀와 들고 있던 가방이 출렁거린다. 내일 출근을 위해일까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울 어느 곳에서도 나의 부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토록 전전긍긍 바쁘게 살았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빠에게 있어서 나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내가 돌아간 후 약간의 미열이 있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고향에 내려가는 날까지 아빠는 나의 부재에 헛헛해하실 것이다. 비우려 해도 비워지지 않는 것이 부모에게 있어 자식의 존재인 것이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고작 일주일을 보지 못했는데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동기들과의 점심시간은 1시간이 짧았다. 적당히 바쁘게 일하고, 퇴근 후의 시간도 알차게 보내고. 잠드는 게 아쉽지 않을 정도로 하루를 보낸다. 칭찬받을만한 완전한 하루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잊지 않으려 한다. 어딘가에서 나는 여전히 자리비움 상태라는 것을. 내가 보낸 하루는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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