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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01. 2021

그녀와 여름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어머니는 늘 여름의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 하셨고, 여름 기온은 매년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었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 까지 한 사무실에 앉아 가끔씩 어머니를 떠올린다.

더위에 기력이 빠져 축 늘어진 채 거실에 누워있을 어머니를.


어머니에 대한 가장 또렷한 기억은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때이다. 

시 발표회가 있었고, 어머니들이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의 시 낭독을 듣고 있었다.


한 아이가 시를 낭독을 하는 도중 몇몇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며 '저 아줌마 예쁘다‘며 소근 거린다.


하얀 모직 천에 옅은 회색 선이 그어진 투피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반 묶음을 하고서 자그마한 핸드백을 왼쪽 어깨에 멘 그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제주도에 있는 지사에 발령이 나 일주일에 한번, 어쩔 땐 이주일에 한번 집에 왔다.

그 장면은 기억력이 나빠 어린 시절의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기억하는 몇 안되는 기억이었다.


어머니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단아하고 차갑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부쩍 말씀이 늘었다는 것. 힘든 것을 힘들다 말하게 되었고, 더 이상 내게 화난 듯 말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조금 괴로웠다.

여느 노인들과 다르지 않은, 어머니의 나이 듦이 마치 나의 존재 때문인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게 태어나게 된 나는,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내게 안기려 하지도 않는 아이’였다.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던 엄마는 날 아빠에게,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잊을만하면 돌아와 미안한 마음만큼 더 무뚝뚝하고 어색하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비쩍 말라 딱딱한 어머니의 손이 딱히 싫었던 게 아니다. 

엄마가 필요했던 순간마다 그녀가 내 곁에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새삼 이제와 안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정말 8살의 내가 했던 생각인지, 엄마를 미워할 이유를 찾던 사춘기 17살 소녀가 내린 철없는 결론이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이 사실일거라고 믿으며 이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머니를 미워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지독한 사춘기를 앓던 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던 해, 어머니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내가 널 망쳤다며 두 번 같은 실수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모든 삶을 동생에게 쏟아 붓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여름 같은 사람이었다. 늘 무언가 한 가지에만 뜨거웠고 오래토록 그 변함없이 자신의 자릴 지켜냈다.  


하지만 그녀는 여름도, 태양도, 그 무엇도 아닌 어머니 그 자신일 뿐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녀는 가스 불을 끄지 않고 깜박 잠이 들어 냄비를 태워 자책하는 일이 잦아졌고, 드문드문 나던 흰머리를 더 이상 가위로 잘라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에 대한 원망도, 동생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든 듯 보였다.


볼 때마다 어머니는 작아졌다. 어찌 만져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린 날 내려다보던 그녀는 이제 내가 한 팔을 들어 뻗어도 그 안에 자그맣게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여름이 싫었다.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여름처럼 뜨거웠던 그녀가 기력 없이 거실 소파에 허물어지게 하는 이 더운 날씨가 싫었다. 

세상에 일어난 모든 일이 내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머니의 허물어진 모습만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여름이 길어질수록 그녀를 떠올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 서로를 원망하며 나누지 못했던 시간들을 오래토록 되새긴다. 하지만 결국 제자리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직도 어머니에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한다. 


생각의 끝은 늘 같다.

올 여름은 덥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뿐이다.

그저, 내일은 그녀의 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비가 내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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