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작년 1월 1일, 나는 서울로 다시 돌아왔다. 참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다. 그전에 서울에 살 적에는 늘 룸메이트가 있었다.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에는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다. 부모님과 같이 지내는 동안 엄마의 잔소리가 힘들었다. 가끔은 내 집에서 언제 나갈 거냐고 구박해대는 엄마가 얄미워 내 기필코 하루빨리 이 집을 탈출해야지 수도 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집을 나오니 뭔가 허전했다. 3년 만에 돌아온 서울이 조금 낯설기도 했다. 종종 아빠는 전화를 걸어서는 너 엄마 아빠보다 가난하니까 맛있는 것도 못 사 먹고살지? 우리는 소고기 구워 먹고 있는데~ 하며 약을 올렸다. 아니거든, 엄마 없으니까 내가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도 맘대로 먹고 잘 살고 있거든! 큰소리치며 전화를 끊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허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아니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가 하며 마음이 허한 이율 생각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며 활동하던 모임들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8개의 모임을 하고 있었는데 봄이 끝나갈 무렵에는 4개까지 줄어들었다.
초반에는 동요했다. 불안하기도 했다. 낯설고 허전한 마음을 지우려 하루에 서너 개의 일정을 잡고 바쁘게 살았는데.. 한동안은 우두커니 방 안에 앉아 뭘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과거의 나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만이 가치 있다고 믿으며 살았다. 혼자서 뭔가를 하는 시간은 인생에 있어 무의미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여행의 장소가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누구와 함께인지가 중요했으며 과거를 떠올릴 때도 장소나 시간이 아닌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를 통해서였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혼자’에 익숙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먹는 밥이 맛있다는 것도 느꼈다. 사실 난 먹는 속도가 굉장히 느린데 비염도 있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밥을 먹다 보면 첫 입은 ‘맛있어 맛있어’ 해대지만 결국 나중에는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적당히 먹다 일어섰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시간쯤 들여 느긋하게 앉아 혼자 밥을 먹다 보니 이제야 이게 무슨 맛인지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러 모임에서 근황 토크로 떠들어대던 말들을 일기처럼 적기 시작했다. 입에서 나와 허공으로 사라졌을 그 수많은 단어들이 종이에 적히자 전혀 새로운 것으로 다가왔다. 다 쓴 글을 며칠 뒤 읽어보면 정말 내가 했던 생각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색다른 내용들이 많았다. 이렇게 흘려보낸 좋은 생각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비로소 나 스스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엄마에게 전화가 올 때면 나는 밖에서 친구와 술이나 커피를 마시고 있거나 모임에서 사람들과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보통 3분을 넘게 통화하지 않았었다. 나는 그 이유가 엄마랑은 친해질 수 없는 어색한 사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언제 엄마의 전화가 걸려와도 대부분 집에서 혼자 있기 때문에 30~40분은 너끈하게 통화한다. 전화를 끊어야 할 별다른 이유도 없었지만, 삶에 이벤트들이 넘치던 때보다 엄마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더 많음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집은 늘 잠만 자는 곳이었다. 아침에 나갔다 밤늦게 들어와서 씻고 자는 곳. 그래서 집에 돈을 아꼈고 가성비가 좋은 곳으로 이사를 셀 수도 없이 다녔다. 이제는 집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정말 이곳이 편안한 내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큰돈을 들여 크고 편안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비록 돈은 더 들지만 정성스럽게 시간과 돈을 들여 꾸미고 나니 내가 사는 집과 동네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여행자처럼 살며 늘 공허했던 마음이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종종 새벽에 울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꼭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속상하고 힘든 마음을 털어놨다. 그러고 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기분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올해도 종종 울어야 하는 일들이 생겼지만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딱 한 번 있었다.) 대신,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조용히 앉아서 내 감정이 어떤지 살폈다. 울어야 한다면 울었다. 대신 혼자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울고 다시 생각했다. 온전히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 자신과 대화가 끝나면 스스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나를 둘러싼 문제들이 빠르게 해결되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는 작년과 올해 ‘혼자’가 되었다. 주변이 고요해지자 비소로, 나 자신과 내 마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보이게 된 것은 나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 정말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 자신에 확신을 가지며 생기는 변화일까? 더 이상 조바심 내지 않아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어줄 것을 이제는 안다.
2021년, 나는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