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머니와 생선무조림
생선은 아무거나 상관없었다. 양념이 맛있기 때문인지 그냥 냉동실에 있는 생선을 아무거나 해동시켜 넣고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어 졸이면 짭쪼름하니 맛있었다. 적당하게 익은 무를 수저로 반토막 내 밥 위에 올려서 크게 한입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너무 맛있어서 할머니에게 레시피를 몇차례 물었지만, 나는 그 레시피를 기억하지 못한다. 할머니집에 오면 늘 해주셨으니까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영영 할머니의 생선무조림을 다시는 먹을 수 없게 되었다.
2. 엄마와 참치김치
중학교 때 내 도시락 반찬은 참치김치와 콩자반, 참치김치와 멸치, 참치김치와 계란말이, 참치김치와 버섯볶음 혹은 참치김치였다. 워킹맘이었던 엄마의 아침은 늘 바빴다. 전날밤 며칠은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의 참치와 김치를 볶아두고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도시락 통에 넣어주었다. 그래서 싫었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요리에 소질이 없던 엄마가 유일하게 맛있게 만드는 반찬이 참치김치였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라고 생각했는지, 고등학교에 올라가 급식을 하기 전까지 3년 내내 참치김치를 싸주었다.
지금도 엄마는 나와 말다툼을 하거나,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거나 하면 며칠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참치김치를 볶아 말없이 식탁에 올려놓는다.
3. 동생과 조개찜
각각 대학생과 취준생이었던 시절, 동생과 나는 조개찜을 좋아했다. 하지만 바깥에서 사먹는 조개찜은 왜 그리도 비싸던지. 얼마 안되는 용돈들로 조개찜을 먹을 방법을 강구했다. 인터넷에서 2인분 정도의 모듬조개세트가 단돈 9천원, 배송료까지 12,000원이었다. 다이소에서 찜기와 마트에서 천원짜리 칼국수 면도 사왔다. 무도 하나 사와 굵게 썰어 국물을 냈다. 새우 두 마리, 가리비 1개, 키조개 대여섯개에 나머지는 백조개, 모시조개 같은 작은 조개들이었다. 둘이 먹기엔 조금 부족해서 찜을 하고 남은 국물로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조개를 쪘던 국물에 애호박을 조금 썰어 넣고 칼국수 면을 넣어 팔팔 끓이면 기가막힌 맛의 칼국수가 완성된다. 15,000원짜리 요리로 햇볕이 들지않는 북향의 자취방의 공기가 훈훈해졌다.
언젠가부터 요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혼자서 자취를 하다보니 재료를 사서 만드는 것보다 사먹는 것이 훨씬 더 맛있고 경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식당 외에는 누군가가 만들어준 요리를 먹을 기회도 줄었다. 학생 때는 친구들의 자취방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볶음밥이며, 만두라면 같은걸 해먹고는 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는 일도 드물어지며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요리를 먹게 되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다 문득 요리라는 단어에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지 않나..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누군가가 해주거나 누군가를 위해 해준 ‘요리’를 먹지 못한다는건.. 내가 요리를 해줬던 혹은 내게 해주던‘사람’들과도 멀어졌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돌아가신 할머니, 멀리 떨어져 사는 엄마, 장가가버린 동생.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생선무조림, 일년에 한두번 밖에 먹을 수 없는 참치김치볶음, 혼자서 해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은 조개찜. 가장 좋아했지만 가장 멀어진 것들, 내 가족, 당신과 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