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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Jun 20. 2022

비가 옵니다.

비가 갑자기 퍼부었다. 앞서 달리던 차들이 일제히 비상등을 켰다. 장거리 운전만 하면 비가 오는구나 생각했다. 저녁 약속을 취소해야겠다 싶었다. 

‘폭우가 오는데 내일로 미룰까?’ 메시지를 보냈다.

‘비 안 오는데?’

친구의 문자처럼 우리 동네로 들어서니 비가 온 흔적조차 없이 맑았다. 비가 오는 날엔 왠지 나가기가 싫어져서, 나는 종종 갑자기 이렇게 비가 오면 약속을 취소하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비가,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세차만 하면 비가 왔다. 주말에 어디 놀러 가려고 하면 비가 왔다. 하지만 그건 내가 비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가 아니다. 비가 싫은 건지, 기다림이 싫은 건지 모르겠다. 약속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 매번 깨지는 그 기대가 싫었던 건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3학년 초여름,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와 함께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교실 창을 무섭게 두들겼다. 어쩌지, 우산이 없는데, 하며 가방을 메고 중앙현관으로 갔다. 이미 많은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현관문 밖으로 나가자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며 함께 또는 나란히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현관 입구에 서서 혹시나 와 있을지 모를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교문 앞에 있을지도 몰라, 하면서 교문으로 뛰어가 담벼락에 기대어 섰다. 작고 비쩍 마른, 고작 아홉 살의 어린 나는, 한참을 그렇게 동그마니 서 있었다. 흐린 날 우산 속에서 유난히 다정한 엄마와 아이들, 빗속에서도 그들의 얼굴은 해사하게 빛났다. 그들의 우산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내 볼로, 어깨로, 바지로 튀었다. 우산을 같이 쓰자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우리 엄마도 나에게 와주면 좋을 텐데 싶었다. 


나무 밑에 몸을 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빗물이 옷에 스며들었다. 한기에 윗니와 아랫니가 부딪쳐 딱딱 소리를 냈다.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10분, 20분, 30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기대가 원망으로, 원망이 포기로 바뀔 때쯤 하나, 둘, 셋을 외치고 나는 달렸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로, 열 살 밖에 안 된 초등학생이 다니기엔 꽤나 멀었다. 그 길을 그때 유행했던 유머 중 하나인 ‘비 사이로 막가’를 외치며 나는 뛰었다. 내가 ‘비 사이로 막가’다. 머리카락도, 얼굴도, 옷도, 가방도, 가방 속 책들도 하나도 젖지 않는다 생각하며 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었다. 빗방울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웅덩이에 발이 빠지며 철퍼덕 넘어졌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흙탕물을 뒤집어써 속옷까지 젖고 말았다. 황톳빛에 붉은빛이 섞였다. 무릎이 까져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책가방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왜 엄마는 한 번을 안 와?”

“아침에 우산 챙겨가지.”

“우산도 다 망가진 것밖에 없는데 창피하게. 그리고 비올 줄 알았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우산이 아니라 엄마를 기다렸던 거라고 말도 못 하고, 어차피 엄마는 새겨듣지도 않을 악다구니를 썼다.  

“엄마 바쁜 거 몰라? 내가 학교 갈 시간이 어디 있어? 친구들이랑 같이 오거나 비 그치면 오면 되지. 유난스럽게.”

엄마는 나보다 더 화를 냈다. 방수가 되지 않는 가방 속에서 물에 불어버린 책들처럼 내 얼굴은 퉁퉁 부었다. 흙탕물에 젖어버린 싸구려 운동화처럼 내 마음도 흙탕이 되어 버렸다. 넘어지면서 다친 무릎보다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마음이 더 쓰라렸다.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엄마에게 와락 안기는 것, 그것은 나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늘 가게일 때문에 너무 바쁜 엄마는 초등학교 6년 내내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런데 비 오는 날이면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교문 쪽을 힐끗거렸다. 혹시 엄마가 서 있지 않을까, 그래도 한 번은 와주지 않을까 하며 비 오는 날이면 교문에 서서 오지 않을 엄마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늘 내가 졌다. 엄마가 오지 않는 날, 비 오는 날이 참 싫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린 끝에 칠순이 넘은 엄마는 이제 내게 온다. 6년 전 여름, 그날도 비가 내렸다. 폐에 구멍이 나서 기침이 몇 개월째 계속되었다. 나는 폐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내가 수술을 받는 동안 엄마는 수술실 밖에서 기도를 하며 나를 기다렸다고 했다. 수술 후에 엄마는 내 옆에서 소변을 받아내고, 나를 부축하며 복도를 걷고, 내게 밥과 약을 먹여주고, 기도를 하며 잠이 들었다. 내가 뒤척일 때마다 ‘어디가 아프냐, 간호사를 불러줄까?’ 하며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진즉 올걸. 이렇게 아파서, 이제야”

처음 수술을 하고 입원을 했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다. 이제 내가 입원을 할 때마다 엄마는 함께 한다. 간호병동으로 가면 된다고, 혼자 입원을 하겠다 해도 기어이 같이 짐을 싼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비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비가 오면 빠짐없이 교문 앞에 서 있던 작은 여자아이가, 한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그 마음이, 그 절망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6년 전 수술 후 퇴원을 하고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엄마와 한 달 동안 같이 살았다. 그때 물었다.

“엄마는 왜 한 번도 우산 가지고 학교에 안 왔어?”

“먹고살기 힘들어서, 너무 일이 많아서 니들 챙길 시간이 없었다.”

내용은 예전과 비슷했지만 말투가 달랐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차장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닿는 빗방울이 시원하다. 

다음 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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