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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의 삶

by 모라의 보험세계

1. 작은 찻잔


초기 치매인 시어머님은 데이케어센터에 아주 잘 다니고 계신다.


“어머님~ 센터에 100살 넘은 어르신 말동무 해드린다고 센터분들이 어머님 칭찬 많이 하시더라구요~”


“100살 넘은 사람 세 명이여! 가만보자 백한살...백...”


놀라운 초고령화 시대를 초근접으로 느낀다. 80살 경도치매 우리 어머님이 센터에서 가장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이보다 거동과 표현으로 평가한다면..^^


시댁에서 과일접시를 찾다가 또 보물을 보았다. 손때 아니 세월이 느껴지는 작은 찻잔. 아주 어렸을 때 본 것만 같은, 익숙한데 새로운 느낌의 뉴트로 분위기.(내 생각에..^^)


요즘은 잘 찾아볼 수 없는 작은 크기의 잔이 딱 마음에 들어온다.


나는 물 한잔 마실때도 큰 머그잔 보다는 딱 한 입먹을 양만 담고, 믹스커피도 종이컵보다 내 전용 쪼끄만 잔에 타서 먹는 게 좋다. 손바닥 안에 소복하게 들어오는 그런 잔.


찻잔을 담는 접시도 어쩜 그리 아담한지 계속 만지작 거리니, 남편이 어머님께 말한다.


“어머니~ 이 잔 우리 가져가도 되죠?”


“가져가 가져가 다 가져가~”


E20298EB-23AE-48ED-BD09-5AA772C54C04.JPG?type=w580 레트로 아니 뉴트로


2. 정해진 양


내가 처음부터 작은 잔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나도 음료를 살 때 1리터씩 주면 더 좋아했었고, 뭐든 넘치게 양이 많으면 그냥 좋았었다. 그런데, 항상 남았다. 처음 한 입 먹고나면 이미 만족감은 다 찼고, 그 뒤는 똑같은데 항상 남겼다. 내 목과 배때기가 다 해결을 못하니까...ㅠㅠ


처음 한 입으로 전체에 대한 만족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그 뒤의 양은 나에게 큰 상관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많은 양보다는 만족도를 결정하는 질이 더 중요해졌다.


사무실 주변에서도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찾을 때까지 여러군데 까페를 계속 돌았다. 어마어마한 양의 테이크아웃 컵을 받으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지구에게 또 몹쓸짓(음쓰생산...ㅠㅠ)을 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음에 쏙 드는 까페를 찾았는데, 고소함이 진한 원두에 우유 아주 조금인 플랫화이트가 나를 사로잡았다. 1부터 9까지 퀄리티가 마음에 들었는데 마지막 10을 자그마한 컵이 정점을 찍어주었다. 아마 음료를 쭉쭉 잘 들이키는 분들은 두세 입이면 없을 양...^^;;


내 몸에 정해진 양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걸 나이들어 알았다. 그 양에 맞춰 먹고 마시고 사는 것이 만족스럽다.


IMG_7496.JPG?type=w580 실제로 보면 증맬루 귀염뽀쨕냠냠커피




3. 정량을 초과하는 보험료


종일 시댁에 있다 오느라, 또 집에 오자마자 당뇨인 반려묘의 밥을 챙기고 인슐린 주사를 놓아주고 혈당을 체크하느라 휴대폰을 나중에 보았다.


고객의 간절함이 담긴 톡이 와 있었다.


치매 가족력이 있어 걱정되는 마음에 치매보험을 가입하고 싶지만, 보험료가 이를 망설이게 하는 상황.


치매 진단자금, 간병생활자금 또는 장기요양등급 지원자금 등 중에서 제대로 된 준비를 하려면 보험료가 작지 않다.


원하는 대로 가입하면 월 지출이 매우 튀어 오르게 된다. 정량을 초과하는 보험료가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은 상담자들의 고민 중 하나인데, 특히 치매나 간병보험은 가입 당사자인 피보험자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 계시거나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시면 보험금 청구도 쉽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가족분들과 상의해서 계약자를 다른 가족이 하도록 추천한다. 이 때 이견도 많이 발생한다.


아무리 필요한 보험이라도 가입자의 지출 정량을 초과하는 보험료는 리스크가 될 수 있어서, 나 또한 고민이 깊어진다. 다른 가족분과의 상의도 한번 더 권해드려야하고... 설계사인 내가 보험가입을 주저하는 고객에게 바로 서명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지는 못할 망정, 다른 가족과 상의해서 합의를 보시고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보류를 권하는 것이 맞는지...^^;;


근데 나는 내가 맞다. ㅎㅎ


사람마다 뭐든 정해진 양이 있다. 건강의 양, 금전의 양, 생명의 양도 마찬가지! 오는 덴 순서 있어도 가는 덴 순서 없다고..^^;;;;;;


선을 넘는다 느껴질 땐 아주 신중하게, 후회가 없도록, 선을 살짝 넘었다해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가기를 원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니 좀 더 생각하고, 내일 고객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어야겠다. 왠지 난 또 말릴 것 같지만..^^;;;


IMG_7497.JPG?type=w580 이렇게 큰 줄 모르고 주문했던 엄청난 음료 ㅎㅎ 거의 남겼다 지구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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