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시간이 줄어들면 내 시간이 훨씬 여유로워질거라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삼시세끼 제대로 챙겨먹고 바로 설거지, 빨래하기와 개기, 밀린 이불 빨래, 러그 세탁,
청소기, 반려냥이들의 밥과 화장실 정리해주고 식재료를 주문하고 등등 가사는 끊임없이 쏟아진다.
티나지 않는 무한반복 노동. 가정주부는 대단하다.
불안감이 증폭하였다.
불안과 대면하여 원인과 해결책을 찾으려면 생각만으로는 안되었다. 생각과 상상, 추측의 조각들이 무수히 많이 머리 속을 떠다니기 때문에, 한 쪽을 정리하면 다른 쪽이 들뜨고, 그 쪽을 매만지면 이미 정리한 것들이 또 다시 둥둥 머리 속을 부유한다.
글로 쓰고 눈으로 보고 자리에 일어선 다음 바로 할 것을 적어야 했다.
67킬로미터나 떨어진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남편과의 통화,
인스타를 보고 놀라서 전화한 이전 회사 동료언니,
시댁 가족들, 친정 가족들의 연락,
코로나 확진자의 반려동물을 지정보호소에 인계하는 일을 하는 동생과의 심도있는 통화,
작년 큰 수술을 하고 건강이 최고라며 나에게 일욕심을 내려놓으라고 말해주던 친구와의 전화가 이어진다.
긴 통화를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담화가 이어지다보니 매번 40분씩은 통화하게 되는 것 같다. 한숨돌리고 나면 반나절이 가곤 한다.
급격한 혈압 상승과 가슴속부터 올라오는 기침이 심해진 것이 이틀 정도 되었던가..
이로 인하여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가 미뤄졌었는데 기침 때문에 찍은 엑스레이에서 염증이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가 주는 타격 중에 가장 큰 곳이 폐가 아니던가.
어린 자녀 둘이 집에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텐데..격리 중에도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소식에, 10년지기 동료인 남편의 걱정이 커진다.
그런데 코로나가 주는 충격은 길고도 크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고 실제로 불안을 현실로 만들어 엄청난 결과로 안겨주고 있다. 그걸 경험 중이다.
자가격리 5일째인 나는 아직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오히려 야채와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신경써서 먹으니 컨디션이 더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나도 남편이나 K처럼 뜻하지 않은 전염으로 격리 입원되고 혈압이 오르고 이유없이 감각이 사라지고, 폐렴이 생길지도 모른다.
치료 후 퇴소를 해도 이전의 상태로 100% 돌아가지도 못할 확률도 매우 높다. (남편은 다른 증상은 다 사라졌는데 미각과 후각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언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으로 입원 시 하 루 10만원씩 나오는 담보가 있는데, H회사의 운전자 보험에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후 운전자 보험을 가입하는 고객들에게는 혹시 모르니 이 담보를 넣어 주었었다. 생각해보니 남편도 이 회사의 운전자 보험으로 작년에 가입했다.
서둘러 살펴보고, 아뿔사.
남편이 가입할 당시에는 코로나 입원 확률이 설마 우리에게까지 해당될까 하는 의문과 함께 운전자보험의 핵심만 보고 가자는 취지로 포함을 안하였다. 내가 설계사인데도 이런 일이 생긴다.
큰 사건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보험이지만,
또 모든 상황을 커버할 수 없는 것이 보험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때도 있다는 걸 직접 경험한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내일 나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오늘 내 건강과 기분에 충실하기로한다.
건강과 기분을 잘 살펴주어야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읽고 누구와 상담을 하던 초집중하고 잘 처리할 수 있다. 내가 잘 지내야 남편도 고객들도 모두 잘 만날 수 있다.
자가격리 4일째인 어제, 땀나게 집안일을 하면서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정체감이 심했었다. 보험문의 고객들과 빠른 상담이 어려운 상황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 원인과 해결책을 일기장에 쭉 쓰고 직접 대면하니, 속이 후련하고 기분이 가벼워졌었다.
격리라는 단어는 매우 갑갑하지만, 매일 나를 대면하고 매일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살펴주게 된다. 나에게 집중하는 진짜 값진 시간.
"여러분, 오늘에 집중하세요. 엄마, 아빠, 자녀들, 친구들, 상사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내 건강과 기분입니다..^^
저는 그것으로 코로나를 헤쳐가겠어요.
물론 코로나가 저를 알아서 비켜가 주길 가장 바라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