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라는 포장지

by 모라의 보험세계


.1. 쓰레기 버리는 날




일요일이지만 출근하기 위해 아파트 입구를 나선다. 분리수거 날이라 양손에 한가득 박스를 품고 나왔다. 갓 세상에 나온 아가를 포대기에 안고 있는 엄마와 분리수거를 마친 아빠가 나란히 재활용 집합장을 나온다. 코로나 속에서도 무사히 태어난 아가를 마주치니 마스크를 꾹 누르고 고쳐 쓰게 된다.




나이가 지긋한 관리소 직원분이 주민들이 휙휙 팽겨쳐놓은 박스들을 다시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다. 품고 있던 박스를 조심스럽게 빈공간에 내려놓고 총총총 빠져나왔다.




횡단보도를 보며 파란불이 켜지면 달려야지 마음먹고 있던 찰나,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마른 체형에 백발의 어르신이 깔끔한 양복을 갖춰 입고는 횡단보도 앞 가로수 둥치에 무언가를 탈탈 털고 있다. 자세히 보니 손에 들린 것은 손잡이가 긴 빗자루와 일체형 쓰레받기. 빨갛고 파란 비닐쓰레기들이 너풀너풀 나무로 떨어진다.




뒤에는 파란불을 기다리는 중년 여성이 있고, 건너편에는 서너명의 사람들이 있다. 보고 있었을까?




주변의 시선이 상관없다는 듯이 매우 천천히 여유롭게 끝까지 쓰레기를 나무둥치에 털어낸 어르신은 일체형 쓰레받기를 들고 길을 떠났다.




깨끗한 양복을 위아래 색도 맞추어 잘 입으셨네. 쓰레받기를 들고 있다는 건 이 주위 건물에 있다가 나왔다는 뜻. 분위기는 교장선생님인데 하는 행동은 아직 잘못된 행동을 가릴 줄 모르는 미취학아동이다. 아니, 유치원생들이 보면 오히려 한소리 들었을 수도 있다.




"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되는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프로그램에는 환경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비롯하여 공공장소에서 하지 말아야할 행동 등등 여러가지 규칙들을 잘 가르쳐준다. 적어도 과거에 내가 수업을 하러 갔었던 많은 아동기관에서는 모두 그랬다. 안그런 곳이 이상하지 참.




어르신은 유치원을 안나와서 모르는 것일까.




파란불이 켜졌다.




달려가던 중 그 나무둥치를 보니 과자봉지와 휴지조각, 먼지뭉치 등 정말 쓰레기통을 엎어놓은 것과 다름없다.






.2. 나이라는 포장지




최소 70세는 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에게 얼굴에 대고 "저기 할아버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라고 내가 직접 말할 수 있을까?




속으로는 부아가 치밀어도 막상 나이든 사람의 얼굴을 보고 직선적인 말을 할 수 없는 스타일의 나이고, 내가 클 때 학교나 가정에서는 연장자에게 지적하는 말을 하는 건 무례하고 버릇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분위기에서 커 왔다.




시대의 파도를 타며 살아오다 보니, 나이가 어쩔 땐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바로 지금같은 때 말이다.




나이가 많으면 내가 못한 경험들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통찰력도 더 클 것이라 생각했었지만,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보다 어리지만 올바르고 일 잘하고 예의까지 바른 사람 수두룩하고 그 사람들에게 배울 점도 참 많다.




너 몇살이야- 로 시작하는 싸움은 수도 없이 봐왔다. 어쩌면 내가 그 백발의 쓰레기노인, 아… 아니아니 쓰레기 버리던 어르신에게 지적하는 말을 했다면 나도 '너 몇살이야' 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포장지 속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포장지 속에 쓰레기만 든 사람도 많고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을 결코 두고 싶지 않다. 포장지도 어느 순간에는 쓰레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중요한 건 무엇을 싼 포장지냐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고 나를 싼 포장지는 어떤 모양일까.




창문 없는 사무실에서 형광등 불빛만으로도 잘 자라주는 초록초록한 버킨(필로덴드론 버킨)이었으면 좋겠다. 화분이나 받침대는 얼마든지 포장으로 꾸밀 수 있으니, 잎이 예쁘게 잘 뻗은 공기정화식물과 같은 나였으면 좋겠다.



나이라는 포장지_모라팀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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