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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Nov 07. 2023

오랜만이야, 코피

오랜만이야, 코피


나는 어릴 때부터 코피를 자주 흘리는 편이었다.


어릴 때는 비쩍 마르고 키 작고 약간 허약한 아이였으니, 코피가 자주 나는 것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몰랐지 솔직히 말해서.


특히 놀랬을 때 코피를 많이 흘렸던 것 같다.

상에서 가장 싫어하고 무서운 동물이 지렁이인데, 자연 교과서에 나온 지렁이 사진을 보고 놀래서 코피도 흘린 적이 있고, 비가 아주 많이 오던 날, 그 얼마나 지렁이가 많았던지, 학교 가는 길에 집 앞에 큰 지렁이를 보고 놀래서 코피를 흘려, 엄마가 업어서 길을 건 주신적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에서는, 둘째 날 속리산을 가는 길에 넘어갔던  말티고개그 구불구불한 산비탈과 낭떠러지의 아찔한 무서움에 놀래서 수학여행 버스 안에서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도록 코피를 흘렸던 기억이 난다. 담임 선생님이 버스 안에 휴지가 모자라서, 종이컵을 내 코밑으로 받쳐 피를 받아 낼 만큼 쏟았던 기억이 난다. 그 어린 몸에 그 많은 양의 피를 쏟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놀랬을까 괜히 죄송한 마음마저 드는 코피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 코피 때문에 나의 중학교 수학여행의 꿀 같은 하루를 꼬박 숙소 방에서 누워 있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체력이 더 약해지니 코피는 정말 밥 먹듯이 흘리고 다녔었다.  공부한답시고 책상에만 앉아있고, 체력은 더 떨어지니 책에 뚝뚝 떨어지는 핏자국은 흔했으니,  걱정 많은 나의 모친께서는 행여 막내딸이 무슨 몹쓸 병이라도 있을까  결국 병원에 데리고 가 진단을 받았지만, 별다른 "질병"은 아니었고, 단지 코 안의 핏줄이 다른 사람보다 약하다고 하여, 임시방편으로 코 안의 핏줄을 땜질처럼 불로 지졌던 기억이 났다.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나의 코 안으로 진동했으며 그 잠시 소름 돋았던 나의 찌릿한 아픔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정말 맞는 의학적 치료였는지 의심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 덕분인지 그 이후 코피는 자주 나지 않았던 듯하고, 대학생이 되고 어느 정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코피는 잠시 잊힌 친구가 되었다.

그만큼 나의 몸도, 체력도 조금은 건강해졌으리라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세상에 완벽한 '건강함'은 없는 터라, 이 코피란 친구는 어릴 적만큼은 아니지만 잊히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간헐적으로 내게 아직도 찾아오고 있다.


가을철 코가 건조해지거나, 아님 정말 피곤에 찌든 날들이 겹치고 겹친 날들 속에 샤워하다 어쩌다 코를 건드리면 그 이후로 하루고 이틀이고 일주일 가까이 넘게도 매일 코피가 난다.

( * 로맨스 영화의 여린 여주인공 느낌은 나지만, 결코 그런 건 아니다)


며칠 전,  이 코피 친구가 찾아왔다.


샤워를 하는데 코밑이 뜨끈하고 짭조름함 물이 떨어지니,

"아... 또 코피" 하면서 의연하게 그저 물로 슥슥 흘려보내고, 닦아내고 막아냈다.


몇 달, 회사일이며, 큰아이 수능 준비며, 성당 일이며, 여러 가지 일들이 겹겹이 산재해 이런저런 일들로 신경도 많이 썼고, 밤늦도록 또는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분주히 몸을 바지런히 움직였던 날들이 누적되었었다. 응당 숙면도 하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날들도 많았다.


 내 몸이 무리를 했으니, 스스로 나의 가장 약한 코안의 핏줄에게  경고 신호를 보냈구나 싶다.

내 몸이 보내는 레드카드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코피를 매일 계속 쏟아냈다. 예민한 콧핏줄이라 세수를 할 때나 샤워를 할 때 살짝만 손이 스쳐도 겨우 피가 말랐던 핏줄이 다시 터져 피를 쏟아내며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가능한 조심스럽게 얼굴을 만지기도 했고 오랜만에 레드카드 경고를 받았으니, 잠시 나의  일을 멈추고

휴식시간을 주기도 했다.


 어릴 때와 다르게 어느 정도 나잇살을 먹을 만큼 먹은 몸이니, 이 코피란 녀석도 예사롭게 넘길일만은 아니겠지...

경고성 메시지를 자주 받지 않도록 조금 "덜" 열심히 살아야 하나, 나의 체크리스트를 재점검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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