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엄마가 영 식사를 잘 못하신다는 병원 측의 전화를 받고, 걱정 가득 안고 부랴부랴 일요일 오후 면회시간에 맞춰 딸기와 쿠키와 빵을 사들고 엄마에게 갔었다.
병원 측의 염려와는 달리 다행히도 엄마는 안색도 괜찮아 보이셨고, 막내딸이 사 온 맛있는 간식을
모두 맛있게 너무 잘 드셨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고 한시름 놓고선 그런 저런 얘기 끝에
갑자기 엄마가 당신의 자개농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는 이제 그 자개농 필요도 없다. 버리던지 어디 팔아뿌라~"
엄마는 더 이상 당신 집에서 살 일이 없음을 어느새 인지하고 계신 듯,
덤덤하게 아니 오히려 너무 해맑게 내게 말한다.
"아니야... 그걸 버리긴 왜 버려... 그냥 작은방 한쪽에 둘께..."
"아니야... 엄마가 이제 거기 들어가서 살 일도 없을 텐데... 짐이다. 고마 버려뿌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알았어요. 내가 그냥 알아서 할게..."
그렇게 말한 후 내 마음엔 비 한 방울이 또르르 또 떨어졌다.
엄마는 이제 그 자개농 필요 없다
엄마의 자개농은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물려주신 농이다.
연식으로 따지자면, 못해도 50년 혹은 60년은 더 되었겠지...
엄마가 평소 애지 중지 소중하게 다뤘던 자개농은 친정집의 안방마님으로 몇십 년째 안방을 지키고 있다.
농장 안 구석구석엔 엄마의 "보물 단지"도 숨겨 놓으시고,
집안의 문서나 중요한 서류도 넣어 놓으시고,
엄마에겐 이 장롱이 곧 집안의 금고이자 터줏대감 역할을 했던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엄마의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이 오래된 장롱을 어디론가 보내던지 처분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엄마는 이제 당신의 마지막을 요양병원에서 보내셔야 할 그런 할머니가 되었다.
엄마의 긴 병원 생활로 인해 친정집은 빈집으로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빈집으로 마냥 둘 수 없기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 엄마가 그래도 아직 살아계시니 떡 하니 팔아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세를 놓자니 집수리와 계약 등 문제가 좀 복잡하게 얽혀있어,
차라리 옆에 가까이 사는 내가 집을 조금 수리해서 들어가 살면서 관리라도 해야겠다 싶어
형제들과 상의 끝에 엄마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이 자개농을 어찌할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골동품 수집가 혹은 자개농으로 인테리어 하는 사람들이 곧 잘 사간다는 얘기를 몇 년 전에
얼핏 들은 것 같아서, 못해도 돈 십만 원 정도엔 팔리겠지 싶어 여기저기 물어보니,
아무도 안 사간다고 대답뿐이었다.
그렇다고 이 가구를 리폼을 해서 쓰자니 내 취향도 아니고,
그대로 가지고 있자니 언젠가 또 버려야 할 건데,
이왕 수리하고 이사할 때 처분하는 게 맞는가 싶기도 하다.
엄마와 외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자개농
그 당시엔 좋은 혼수였고 그 시절 누구나 가지고 싶어 했던 "여자들의 로망"이었던 자개농이
세월을 지나 이젠 처치 곤란한 애물단지처럼 되어버렸다.
그저 조금 서글프기도 하고 한편으론 어차피 소모되는 물건일 뿐인데, 너무 의미를 두지 말자라고
스스로 다독 거리고 있다.
엄마...
진짜 버릴까? 그래도 엄마의 소중한 물건인데...
엄마의 엄마가 주신 건데...
덜컥 버리려고 하니 마음이 영 가볍지만은 않다.
자개농의 그 무게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