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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Apr 26. 2023

거북이 호야

그리다 만 그림

거북이 호야, 그리다 만  그림


아마 큰 아이가 7살 때쯤이었나 보다.

매주 장을 보러 가는 마트 한편에 금붕어, 햄스터, 거북이 등 집에서 작게 키울 수 있는 반려 동물 코너가 있었다. 카트에 일주일 동안  먹을 먹거리를 한가득 담고서 계산대를 가기 전에 필수 코스처럼 그곳에 가서 물고기와 햄스터 등을 실컷 구경하고 집에 오곤 했다.


그때 아이가 한참 공룡을 좋아했던 시기였다.

(어느 집이나 아들들은 대부분 공룡을 좋아하더라고)

동화책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정도의 커다란 크기의 공룡들이 그 순수한 영혼의 눈동자엔 복슬복슬한 강아지 고양이들보다 훨씬 더 이쁘고 귀엽고 신기한 동물이었던 듯하다.

그 이름도 좀 길어야지, 한글도 다 못 뗐던 그 어린 아들이,

 도 외우기 어려웠던 그 공룡들의 이름을  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름 다음으로 공룡 이름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꾀고 외울 정도였으니...

현재 실존하지 않는 전설적인 동물(파충류)라서 더 좋아했는지, 아님 커다란 그 크기에 반했는지, 공룡을 사랑하는 그 이유를 어른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긴 어려웠으나,

아들의 공룡에 대한 애정은 그림책이 닳고 닳을 정도로

매일같이 보고 읽으며  그 사랑을 키워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마트의 반려 동물 코너에서도 당연히 우리 큰 아이 눈엔 거북이만 보였겠지. 나름 공룡과 가장 비슷하게 생긴 거북이가 그때 당시 우리 아이에겐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독 마트 어항 속의 거북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운명이었을까.

그 거북이는 벽에 딱 붙어선 채, 마치 우리에게 인사라도 하듯 손으로 벽을 긁으며 어항으로 올라오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간절히 '나를 좀 려가 줘'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우리 큰 아이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간절히 나를 바라보며 거북이를 집에 데리고 가자는 아들의 눈빛... 뭐에 끌렸을까.

우리는 그날 그 거북이를 봉지에 담아 우리 집 거실 어항으로 이사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이름도 지어줬다.  


호야


(의미는 모른다. 아들이 그냥 붙인 이름이다)


거북이 호야는 무탈히 잘 자랐다.

혼자도 잘 살았다.  의외로 귀여웠다.

눈이 초롱 초롱 했고, 먹이를 뿌려주면 입을 벙긋 벙긋하며 먹는 입 모양도 참 귀여웠다.  등딱지도 반들반들 보석처럼 보였고, 작지만 뾰족한 손톱도 앙증맞아 보였다.

그리고 매주 어항에 물갈이를 해 줄 때 잠시 거실 바닥에 내려놓으면 " 육지"를 걸어 다니면서  자유를 즐겼던 호야였다.


강아지나 고양이들과 달리, 작은 어항 속에 갇혀 지내는 호야에겐, 일주일에 한 번 어항 청소 하는 날이 거북이 호야에겐 자유의 시간이며 세상 넓은 곳을 탐험하는 시간이었다.



그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처음으로 공모전에 도전할 계획을 세웠었다. 스토리를 짜고 그림 5컷 정도를 그려 제출하는 공모전이었다.


거실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거북이 호야가 떠오르면서

나의 첫 동화 스토리를 생각해 냈었다.


작은 어항에 사는 작은 거북이 호야, 다른 반려 동물인 고양이와 강아지들처럼 언제나 육지를 자유롭게 거닐고 싶고, 상상만 했던 고향의 넓은 바다를 마음껏 헤엄쳐 다니는 꿈을 꾸는 아기 거북이 호야의 이야기.


공모전은 당연히 떨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다.)

러곤 힘이 빠져 스토리 완성도 잠시 중단했었다.

좀 더 이야기를 보완하고 그림도 새로 그려야지 생각하고선 서랍에만 넣어 놓은지 벌써 몇 년째다.


그리다 만 그림이다.


미완성된 무언가는 항상 더 생각이 나기 마련인가.

가끔 저장된 묵혀둔 그림들을 꺼내어 본다.


더 늦기 전에...

조금 먼 미래 같겠지만, 언젠가 태어날 나의  손주가 공룡을 좋아할 나이가 되기 전이 그림책 이야기를 완성해 보리라.

거북이 호야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 보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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