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저축펀드 해지해 주세요."
"연금저축펀드 해지하시면 연말정산 세액공제받으신 16.5% 세금 뱉어내셔야 해요."
"네, 괜찮아요. 해지해 주세요. "
연금저축펀드를 가입하고 매년 198,000원의 세액공제를 받았다. 그 당시 연봉이 5,500만 원 이하여서 16.5%가 적용됐다. 만약 연봉이 5,500만 원 초과였다면 13.2%인 158,400원을 돌려받았을 텐데 연봉이 낮은 덕에(?) 39,600원이나 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1년에 120만 원을 불입하고 198,000원을 돌려받는건 정말 큰 세제혜택이다. 어느 곳에 투자해도 매년 이런 수익률을 기록한다는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문제는 이걸 그때 깨닫지 못하고 인생을 한참 살고 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름 돈을 잘 모으는 편이였고, 크게 사치하는 편도 아니었고, 실행이 빠른 편이라 좋다고 판단되는건 바로바로 실행하는 편이였다. 누구보다 노후를 걱정하고 준비하고 싶었으며, 돈을 빨리 모으고 싶었다.
적금, 펀드, 보험, 일단 혹하는 것들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가입했다. '일단 가입하면 어떻게든 유지하겠지'하는 생각에 마음이 앞섰다. 사업비를 따져보기는커녕 의무 납입기긴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불입을 할 수 있을지 계산하지도 않았다. 무지한 경제관념, 빨리 부자가 되고 싶은 조급함, 미친 실행력의 결정체라고 해야 하나.
연금저축펀드를 가입하고 매월 10만 원씩 자동이체를 설정했다. 매월 자동출금되다 보니 내가 연금저축펀드에 가입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그러다 원천징수영수증을 받으면 '아, 내가 연금저축펀드에 가입했었지.' 하고 한번 인지했다.
그 당시에는 연금저축펀드로 공제받는 198,000원이 나에게는 미비한 것이었다. 매년 13월의 월급이라 불릴 만큼 정말로 한 달 치 월급만큼 세금을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세금을 많이 돌려받는다는 건 그만큼 내가 세금을 많이 냈다는 것인데 나는 공돈인 것처럼 신이 났었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198,000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의미 없는 돈이었다.
여기서 잠깐 언급해 보자면, 그 당시엔 매년 고정적으로 성과 보너스가 나왔다. 급여를 작업할 때 특정달에 성과급으로 큰 금액을 넣으면 급여 프로그램에서 소득세가 30% 정도로 계산되어 차감된다. 1,000만 원을 받으면 실수령액이 700만 원인 것이다. 이때 300만 원은 당연히 버리는 돈은 아니고 미리 낸 세금이기 때문에 연말정산 후 차액만큼은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몇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이자도 없는 나라의 곳간에 고이 모셔두는 상황이 된다. 세금을 미리 과하게 납부할 필요가 없는 이유이다.
급여 프로그램에서 자동으로 계산되는 소득세는 참고용일뿐 꼭 그만큼을 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만약 연만정산을 과하게 돌려받는데 그것이 보너스 받을 때 적용되는 소득세 요율 때문이라면, 급여 담당자에게 요율을 낮춰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기계적으로 5년 정도 세액공제를 받으며 연금저축펀드를 유지했다. 몇십만 원 더 납입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음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목돈이 필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연금저축펀드였다.
'아, 연금저축펀드 가입한게 있었지. 얼마나 모였으려나. 헉, 600만 원? 대박!!'
연금저축펀드는 어느덧 600만 원이라는 목돈이 되어있었다. 나는 공돈을 발견한 듯이 신이 나서 바로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해지를 요청했다. 담당 컨설턴트는 그동안 공제받은 세액을 다 뱉어내야 한다며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재차 권했다.
'아니 뭔 상관이람. 어차피 생돈 내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내가 받은 돈 뱉어내는 건데. 당장 돈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지.'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뱉어내는 세금 16.5%는 아깝지 않았다. 그동안 받은 걸 내는 거니까. 그리고 뺕어내는 세금보다 당장 내 수중에 들어오는 6백만 원가량의 돈이 더 중요했다. 근데 문제는 급해서 해지할 수밖에 없었더라도 다시 재가입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매년 16.5%를 돌려주는 훌륭한 재테크의 수단인 연금저축펀드와 이별했다.
며칠 전 신한투자증권에 가서 내가 가입했대 해지한 연금저축펀드 거래내역을 확인해 보았다.
원금 6,200,000+수익금 571,491=6,771,491원. 여기서 16.5%인 1,117,290원을 제한 5,654,164원을 받았다. 돌려받은 세금을 재투자하면서 지금까지 유지했더라면... ㅠㅠ
시간이 주는 선물 '복리'의 개념이 전혀 없었던 나였다. 돈을 모으고 싶다는 욕심에 늘 마음이 앞섰다. 장기상품을 덜컥 가입하고 열심히 저축하다가 돈이 필요하면 해지하기를 반복했다. 몇 년을 유지하고도 원금에 미치지 못하는 돈을 돌려받기 일쑤였다.
2010년 4월 가입, 납입보험료 300,000원
3년 유지 후 해지
2011년 3월 가입, 납입보험료 121,300원
3년 유지 후 해지
2011년 3월 가입, 납입보험료 200,000원
3년 유지 후 해지
2017년 3월 가입, 납입보험료 150,000원
2회 납입 후 해지
안 좋은 상품이라고 판단되어 원금 30만 원 포기하고 해지함
2018년 2월 가입, 납입보험료 30,000원
3년 납입 후 해지
2017년 4월 27일 가입, 납입보험료 102,935
6정년도 납입 후 해지
2017년 5월 2일 가입, 납입보험료 102,935
6정년도 납입 후 해지
2019년 4월 17일 가입, 납입보험료 100,160
6정년도 납입 후 해지
금융문맹이라는 말이 있다. 금융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의미한다. 부지런히 장기상품을 가입하고, 열심히 모으고, 해지하기를 반복하면서 나의 자산은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장기상품에 대한 이해와 금융지식이 전혀 전혀 없었던 나는 구제가 필요한 진정한 '금융문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