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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쑤 Oct 26. 2024

나는야 연금저축펀드 얼리어답터


"수연씨, 연금저축펀드라는거 알아?"

"아뇨, 처음 들어봤는데요. 그게 뭐예요?"

"왜 우리 연말정산하면 개인연금 세액공제받잖아. 그걸 펀드로 가입할 수도 있다네. 그럼 어차피 펀드 가입하는거 연금저축펀드로 가입하면 연말정산 세액공제까지 받을 수 있는 거잖아."

"오, 정말요? 그런게 있어요? 그럼 당연히 연금저축펀드로 가입해야죠."


2009년,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였다. 그 무렵 중국에 투자한다는 차이나 펀드가 수익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펀드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무슨 상품을 판매한다더라, 무슨 펀드를 가입해야 한다더라, 중국펀드가 수익률이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은 '카더라 통신'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다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 같이 은행에 갔다. 창구마다 차이나 펀드 홍보물이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Pabitra Kaity님의 이미지 입니다.


"저 차이나 펀드 가입하려고 하는데요."

"아, 그러세요? 펀드는 원금보장이 안되는 투자상품인거 아시죠?"

"네? 원금보장이 안된다고요? 그럼  원금이 0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요?"

"네, 맞습니다."


아니, 원금보장이 안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예금, 저축,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펀드가 주식투자처럼 원금을 잃을 수 있는 투자라는 것도 모른체 펀드를 가입을 하러 갔다.


사실 예금, 저축은 둘째치고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가 참여하는 계모임의 일원이었다. 계주 아주머니가 계원들을 모집해서 한 명씩 돌아가며 계를 타는 형식의 모임은 그 당시만 해도 동네 어르신들의 흔한 목돈 마련 방식이었다.

이론대로라면 정해진 원금에 계를 먼저 탄 사람이 이자를 내고 나중에 타는 사람이 이자를 받는 방식은 논리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100%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모임이기 때문에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잊을만하면 계주가 도망갔다더라, 먼저 타먹은 사람이 나자빠졌다더라, 하는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주식의 '주'자도 모르던 내가 한국도 아닌 중국에 투자를 한다. 그런데 자칫하면 투자금이 0원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중국이 엄청나게 발전할 예정이라 투자금이 몇 배로 불어날 수도 있다. 아니 불어날 것이다. 

차이나펀드에 가입하면 무조건 수익이 날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던 시기였다. 원금보장이 안된다는 말에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머리를 털고 그럴리 없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원금보장이 안된다는건 알고 있을게요. 차이나 펀드 가입해 주세요. 매월 10만 원씩 자동이체로 설정하겠습니다."


이렇게 나는 생애 첫 펀드에 가입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sanjay k j님의 이미지 입니다.


직장 동료를 통해 연금저축펀드라는 금융상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걸 알게 된 건 차이나펀드를 가입한지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연금저축펀드를 가입하면 주식에 투자하는데다가 연말정산 세액공제로 일정 금액을 돌려주기까지 한다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였다. 


이미 원금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고 펀드를 가입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연금저축펀드는 좀 더 쉽게 가입을 결정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증권사에서 생애 첫 CMA 계좌도 가입해둔 상황이었다. 나는 얘기를 듣자마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한 뒤 바로 신한투자증권 지점에 방문했다.


"저 연금저축펀드 가입하러 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담당 직원분 연결해 드릴게요."


그 당시만 해도 증권사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곳이었다. 나는 CMA 계좌를 개설하기 전까지 증권사는 주식하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돈을 넣어놓기만 해도 3% 가까운 이자를 준다는 계좌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 증권사를 방문해 CMA 계좌를 개설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계좌에서 바로 주식거래가 가능하다는걸 모른채 10년 이상 현금을 보관하는 파킹통장으로 사용했다.


나는 담당직원이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인포데스크 앞에서 기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뉴스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큰 전광판에 회사 이름과 실시간 주가가 빽빽하게 채워져있었다. 나이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 전광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보기 힘든 객장의 모습이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젊은 남자직원이 나왔다.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가니 은행같이 업무 보는 창구가 아니라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공간이었다. 그 직원이 안내하는 책상으로 가서 설명을 듣고, 서류에 사인을 하고,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연금저축펀드를 가입했다.


2009년 당시에는 연금저축펀드 상품을 가입하면 그 상품으로 연말정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2013년 3월 연금저축계좌가 생기면서 지금처럼 계좌 안에서 다양한 상품을 투자할 수 있는 형태가 됐다. 연금저축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그 시절, 증권사에서 연금저축펀드를 가입했던 나는 소위 말하는 연금저축펀드 얼리어답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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