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나는 연금저축펀드를 해지하고 난 후 그런 상품을 가입했었는지조차 생소할 만큼 까맣게 잊고 지냈다. 100만 원이 넘는 세금도 쿨하게 뱉어내는 내가 연말정산 세액공제를 198,000원 덜 돌려받는건 조금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나이가 들면서 연차도 쌓이고 연봉도 올랐다. 연봉이 오르니 자연스럽게 세금도 많이 내게 됐다. 전체적으로 받는 연봉은 이전보다 확실히 높았다. 근데 회사를 옮기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성과급을 못 받게 됐다는 것이다.
성과급을 받지 못하다 보니 이전처럼 한 번에 20%~30%씩 떼던 소득세를 떼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매월 급여만큼 소득세를 떼다 보니 연말정산에서 돌려받기는커녕 세금을 토해내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 됐다.
세금을 덜 내고 덜 받는 것까지는 좋은데 토해내는 건 안될 일이었다. 기본 소득세를 내더라도 100만 원 정도는 돌려받아야 직장인으로서 1년을 버틸 에너지가 생기지 않겠는가. 나는 그동안 관심이 1도 없던 원천징수영수증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뜯어봐도 공제받을 수 있는 항목이 없었다. 세금을 더 내든가 아니면 그냥 외줄 타듯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년 연말정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은행에 여기저기 붙어있는 IRP 홍보 전단지를 보게된 것이었다.
IRP를 가입하고 유튜브를 보다가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앱을 출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금저축펀드를 가입하면 좋다는걸 알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고 있던 나에게 좋은 소식이었다.
앱을 설치한 후 비대면으로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고 펀드를 매수했다. 투자할 펀드를 결정하고 자동이체를 설정하기까지 긴 여정이었다. 모든것이 새로웠고 그랬기에 매 단계마다 이해하고 실행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됐다.
자산운용 앱에서 직접 펀드를 가입하면 좋은점은 수수료가 낮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에서 출시한 편드를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가입하면 당연히 은행이나 증권사에 판매수수료를 내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나는 매번 새롭게 알게되는 금융지식을 습득하기에 급급했다. 한두 번 들어서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여러 개의 영상을 찾아 여러 번 반복해서 봐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메리츠자산운용에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했을 땐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몇 개의 펀드를 선택하고 매월 적립식으로 400만 원을 채웠다. 그때 나 스스로 느꼈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펀드 수익률은 꽤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연말정산 한도인 400만 원을 전부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운용하다 보니 선택의 폭이 메리츠자산운용에서 만든 펀드로 제한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걸 인지하지 못했는데 금융지식이 쌓여갈수록 좀 더 다양한 상품으로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증권사에서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됐다.
증권사에서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면 개별주식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증권사 상품을 연금저축계좌에서 운용할 수 있었다. 모든 운용사에서 만든 다양한 펀드와 상장되어 있는 ETF 등의 실적배당형 상품에 다양하게 투자가 가능했다.
연금저축에서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00% 주식형 상품
일반펀드나 ETF
파생형 ETF
다음과 같은 상품은 투자할 수 없다.
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
레버리지나 인버스 등 리스크가 큰 ETF는 투자
상장인프라펀드와 리츠
신한증권에서 이미 IRP 계좌를 개설해서 운용하고 있었는데,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는 것은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다들 이런 정보는 어디에서 귀신같이 얻는건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신한증권 담당 컨설턴트와 상의한 뒤 바로 비대면으로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했다.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고 나면 타기관에 있는 연금저축을 가져올 수 있다.
"컨설턴트님, 저 이번에 연금저축계좌 개설했거든요. 지금 메리츠자산운용에 투자하고 있는 자금 이전해오고 싶습니다."
"아, 그러세요? 간단합니다. 먼저 신한증권 앱을 열어보세요. 연금저축 메뉴를 보면 연금저축 가져오기라고 있어요. 그것만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담당 컨설턴트에게 요청하면 타기관과 확인하고 몇 가지 절차를 거쳐 자금을 가져오게 된다. 나는 타 기관에서 걸려오는 전화에 자금을 이체한다는 내용만 확인해 주면 되었다. 내가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다만 현물이전은 안됐었기 때문에 투자하고 있던 모든 펀드를 매도한 뒤 현금화를 해놓아야 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만 장기투자를 시작할때 잘 알아보고 결정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매번 방향을 바꿀 때마다 투자하고 있던 상품을 강제로 매도해야 했다. 솔직히 현물 이전이 가능하다고 해도 매도했을 것이다. 다양한 상품으로 투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증권사에서 연금저축계좌를 개설하고 다양한 상품에 투자했다면 지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굳이 복잡한 시행착오를 겪을 필요가 없었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매리츠자산운용에서 투자한 연금저축펀드가 1,000만 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돈은 안전하게 나의 신한증권 연금저축계좌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