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님, 혹시 ISA가입하셨어요?"
"아니요. ISA, 그게 뭐예요?"
회사 업무차 은행을 방문하게 되면 직원분에게 새로운 예금이나 적금, 통장 등 다양한 상품을 권유받게 된다. 생각해 보면 지난 20년간 유행처럼 흘러갔던 대부분의 상품들을 이름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가입을 하든 안 하든 새로운 상품을 듣게 되면 물어보게 되고, 설명을 듣게 되고,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권유해준 직원분을 생각해서 가입하기도 한다. ISA도 그런 상품 중 하나였다. 내가 궁금증이 가득한 눈으로 ISA가 뭐냐고 묻자 직원분은 상품 설명서를 내밀며 ISA에 대해 신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이번에 새로 출시된 계좌인데 정말 좋은 계좌에요. 계좌 하나 만들어 놓으면 거기다 예금·펀드(ETF, 리츠 포함)·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을 수 있어요. 근데 중요한건 여기서 발생한 이자소득, 배당소득세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는 거예요."
직원분은 매년 2,00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으며 최대 누적 납입액 한도는 5년간 1억 원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의무 만기가 5년이기 때문에(2020년 이전에는 만기가 5년이었다.) 일단 하루라도 빨리 계좌를 개설해 놓는게 좋다고 했다.
5년 내내 계좌에 돈을 넣을 필요는 없고, 일단 계좌를 개설해서 10만 원만 넣어논 뒤에 계좌를 유지한다. 그리고 5년 차에 1년 적금한다고 생각하고 투자를 해서 비과세 혜택을 받고 해지해도 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가입해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고 돈을 불입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10만 원 넣어놨다가 5년 뒤에 해지하면 되니까 계좌를 개설해도 나쁠건 없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ISA를 개설했다.
출처: 조선일보 / 일러스트: 이진영
2016년 3월, 절세를 통해 재산형성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취지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ndividual Savings Account)인 ISA가 도입됐다. 5년간 최대 1억까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계좌를 개설하고 난 뒤 직원분도 진짜 좋은 계좌니까 이왕 개설한거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시라며 몇 번을 강조했다. 나 역시 일단 계좌를 개설해 두면 어떻게든 활용하게 되리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팀장님, ISA 아세요?"
"ISA? 그게 뭔데?"
"이번에 은행 갔다가 ISA 추천해 줘서 별생각 없이 개설했는데 비과세 통장이라 여기서 펀드 가입하면 좋겠더라고요."
"비과세 통장?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 그거 나도 몇 년 전에 개설했어. 나 진짜 그 계좌에 10만 원 들어있는데."
계좌를 활용하게 되리란 막연한 기대감과 달리 나의 ISA는 완전히 방치된 채 기억 속에서조차 잊혀져 있었다. 비과세통장이라는 것만 알뿐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5년이 지나면 비과세 혜택을 받고 계좌를 해지할 수 있다는 것만 기억한 채 시간은 또 흘러갔다. 5년 차가 되면 1년 동안 만이라도 적금이나 펀드를 투자하고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실천하지 못했다.
드디어 계좌를 해지할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5년이 되던 날 바로 계좌를 해지하고 묻어두었던 소중한 나의 원금 10만 원을 찾았다. 내가 넣어논 돈이었지만 그래도 공돈이 생긴 것처럼 기뻤다.
출처: 비즈워치
그런데 이런 나의 행동이 얼마나 바보였는지 시간이 흐른 뒤 깨닫게 됐다. 5년이라는 기간을 지켜야 했던 이유는 바로 '비과세'라는 혜택을 받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나는 그 어떤 투자활동도 하지 않은 채 10만 원을 원금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 즉, 언제 계좌를 해지했어도 비과세 혜택을 받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ISA는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 운용방식에 따라 신탁형과 일임형으로 구분되었다. 신탁형은 금융사에 매매만을 신탁하고 운용은 개인이 직접 하는 유형이다. 일임형은 말 그대로 개인이 금융사에 투자를 일임하여 투자 전문가에게 운용을 맡기는 유형이다.
내가 개설했던 계좌는 신탁형이었고, 나는 전적으로 내 스스로 상품을 선택하여 매수, 매도 등 투자활동을 직접 해야 했다.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계좌 하나 덜렁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내가 스스로 투자 활동을 한다는 건 투자에 대한 관심과 의지 없이는 쉽지 않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된 건, 나처럼 은행에서 가입한 경우엔 해당 사이트나 앱에 접속하면 ISA 메뉴가 별도로 있다는 것이다. 그 안에 신탁형과 일임형으로 나뉘어 각각의 메뉴에서 내가 원하는 투자 활동을 할 수 있다.
신탁형의 경우 이 메뉴에서 상품을 직접 매수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예약 매수도 할 수 있고 수익률 및 해지예상금도 확인할 수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어렵지 않게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전에 첫 번째로 할 일은 투자할 상품을 내가 직접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은행에서 추천해 주는 상품을 가입하는 게 익숙했던 나에게 이게 가장 넘기 힘든 관문이었던 것 같다.
약간의 관심과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받을 수 있었던 비과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5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냈다. 내가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였을까. 나는 이렇게 많은 기회들을 놓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