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죄

by miu

이유는 없어. 그냥 해. 자이언트 펭수의 오랜 팬이기도 한 나는, 펭수의 이 말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가끔 나도 사람들에게 장난스레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냥 해. 이 말 한마디가 참 단순한 것 같아도 그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곱씹어 보기도 했다. 내가 스물 다 여섯이던 해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겨울이 그리 추웠다는 건 추위의 체감도보다도 내 마음이 혹독하게도 추웠음을, 모든 것이 꽁꽁 언 겨울이었음을 뜻했다. 그 시절 나는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법이 없고 감정의 높고 낮음이 굉장히 심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집에만 돌아오면, 불이 다 꺼진 빈 집 현관문에 잠시 선채로 공허함에 젖기도, 서울 토박이가 아니었기에 그땐 그 외로움을 숙명이라고 여기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갓 대학에 입학한 그 해부터 시작된 나의 외로움은 직장인이 돼서도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이어졌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부인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의 불안과 우울은 꽤나 오래전부터였다는 것, 제때제때 즉각 즉각 왜 나를 돌보지 않았을까. 하는 사무치는 후회와 서글픔, 어리석음에 한동안 많이도 아파했다는 것까지. 그러나 지금은 그로 인해, 유별날 만큼 날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


현실은 그냥 길을 걷다가도 "그땐 정말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왜 그땐 미처 몰랐을까. 만일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하고 갑자기 내 머릿속에 파도가 인다. 다행인 건 그 생각이 더 깊게 혹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는 점인데, 단 10초에서 30초 정도 사이로 내 빠른 걸음과 함께 휘리릭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냥.이라는 말이 내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는, 어떨 땐 내게 거는 주문 같기도 또 그 말이 가진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어둠일 때나 정말 앞이 캄캄할 때 특히 효과가 크다. 방법은 없다. 일단 해야 할 일이 앞에 있으니 그냥 하자.라고 생각하게 되면 직면한 문제들이 어느새 해결돼 있기도 하고 마음의 평정심도 이내 되찾게 된다.


대학생이던 내가 윤주 언니(언니는 내 불안했던 정서를 오랜 시간 동안 봐왔고 그때마다 공감과 위로로 날 다독여줬던 고마운 절친이다)에게 자주 물었던 말은 "언니, 나를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뭐야? 뭘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였다.


그때마다 언니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할 때 행복한 지, 즐거운지, 어떤 걸 좋아하지 않는지 등등. 너에 대해 많이 질문하고 생각해 보는 게 아닐까?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도 없어. 부딪히고 경험하고 극복하면서 알게 되는 거지."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진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에야 내가 깨달은 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란, 나를 그 누구보다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것, 내 감정과 기분에 집중하고, 내 안의 나와 차분하게 앉아 공감하고 이해하고 설득하고 달래보고 배려하고 질문하고 답해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하다 보니 그렇게 보이지 않던, 그렇게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내 안의 나.가 나를 찾아와 주었고 나.에 대해 이야기해주었고 답해주었다. 내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와 자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내 안의 아이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혼내는 듯하면서도. 그 어리석음도 너였다고,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인가 나의 상념들이 결국에는 삶의 철학적인 의미로 귀결돼 버리는 것도 어쩌면 내가 내 안의 나와 매일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 내 정신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 의 또박한 증상이지 싶다.


내 안의 아이가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펭수처럼 "이유는 없어. 그냥 해."인데, 자기 전에도 내가 조금만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고민스러울라치면 "걱정 마. 걱정한다고 불안해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거 잘 알잖아. 이유는 없어 그냥 해. 하다 보면 보이기 시작할 거야. 날 믿어봐!"라고 말해준다.


사람이 늘 완벽할 수는 없겠고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후회해 본 적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이제는 가급적 스스로에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는 더더욱 싫다. 그러려면 의식이 깨어있어야 하는데, 내가 늘 더듬이를 쫑긋 켜고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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