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김치

by miu

초등학생 시절 언니와 내가 이맘쯤만 되면 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엄마가 내려준 임무였는데, 말린 태양초 고추, 양파, 마늘 등 김장재료가 가득 담긴 스테인리스 통을 방앗간에 가지고 가 잘 갈아진 새빨간 김장양념으로 다시 담아오는 일이었다.


집에서 손수 김장을 하던 엄마는, 옆집 이모와 함께 김장 준비하랴 바쁘고 언니와 나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김치 통을 들고 방앗간을 왔다 갔다 했던 그 시절 김장철이 생각이 났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만큼 그립다. 우리가 엄마의 심부름을 신나게 갔던 이유는 방앗간 앞 문방구(내가 어릴 때만 해도 문구점을 문방구라 불렀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방앗간에 엄마의 주문을 맡겨놓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문방구에서 종이인형을 각자의 취향대로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언니와 나는 취향이 확실히 달라 종이인형 사는 거에 있어서만큼은 싸울 일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살던 동네, 방앗간, 문방구, 비디오 가게, 핫도그 집, 정육점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게 못내 아쉽다. 세월이 그마만큼 많이 흘른 탓이겠지. 하고 숨을 고른다.


종이인형을 손에 하나씩 들고 우리가 향하던 곳은 핫도그 집이었다. 하나에 500원 하던 그 집의 핫도그는 꿀맛이었는데, 조금은 무거운 양념통을 들고 가려면 영양을 보충해야 된다며 그렇게 하나씩 핫도그를 입에 물었다. 핫도그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의 취향은 확실했다. 설탕을 돌려가며 가득 묻혀야 한다는 것. 그 바탕엔 온리 케첩만 묻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볼일이 끝나면 그제야 방앗간으로 가서 맡길 때보다 무거워진 양념통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김장 준비를 마친 엄마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김장을 하셨다. 엄마가 김치 담그기에 이어 꼭 빼놓지 않았던 건 총각김치를 담그는 일이었다. 총각김치는 둘째 딸 초아가 제일 좋아하는 것. 하시며 김치만큼이나 가득 담그셨다. 총각김치 말고도 고구마 줄기 김치도 엄마의 전매특허였다.


엄마의 총각김치는 비로소 푹 익었을 때 빛을 발휘한다. 우리 집에서 총각김치는 썰어 먹었던 적이 없다. 총각김치는 본래 그 통무의 상태로 먹어야 제 맛이라는 것. 총각김치 끝을 톡 하고 한 입 베었을 때 나는 그 둔탁한 소리가 제 맛.이라는 걸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난 일찍이도 알아버렸다.


개인적으로 총각김치는 익으면 익을수록 좋다. 맛있다. 는 생각이다. 라면을 먹을 때도 신김치보다도 푹 익어 버린 시큼한 총각김치와 먹기를 고집했고 삼겹살을 먹을 때도 삼겹살 한 점과 그다음은 총각김치 한 입을 넣는 걸 고집했다. 그 안에서 터지는 총각김치와 삼겹살 맛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김치보다도, 백김치 보다도, 깍두기 보다도, 내가 이 총각김치를 유독 고집했던 이유는, 총각김치에서 느껴지는 시큼한 맛과 성미 때문이었다. 어느 집이나 총각김치 맛이 비슷할 것 같지만 분명 집집마다 천차만별의 맛을 낼 거라 확신하는데, 엄마의 총각김치는 깔끔했으며 익지 않은 상태에서보다 익은 상태에서 확실히 색다른 맛을 냈다.


담근 직후의 총각김치와 익은 직후의 총각김치의 맛이 확연이 다른 것도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총각김치는 개성 있었고 푹 익은 후에라야 진정으로 진짜 자기의 모습을, 자기의 맛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더욱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단 맛, 쓴 맛, 신 맛, 짠맛. 을 알게 되고 내 삶을 매일 관조하게 되는 요즘, 이제는 나라는 사람도 푹 익어가면 갈수록 내면의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진짜 내 모습을 만나게 되기를, 시큼한 맛을 내는 그러나 황홀한 맛을 선사하는 총각김치처럼 그러면서도 내 개성을 잃지 않고 나의 본질을 숭고하게 지켜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총각김치 닮은 사람이고 싶은 나의 소망은, 현재 진행형이며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나름의 방향과 철학으로 푹푹 잘 익어가고 있는 듯하다.


안 그래도 김치가 다 떨어졌는데, 이 참에 냉큼 총각김치를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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