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냉큼 주문했다. 몇 가지를 제외하곤 물건 구매에 있어 까다로운 성미가 아니다. 수만 개의 탁상 달력 중에 내 눈에 한 번에 들어온 달력을 쓰윽 한 번 살펴보고선 색상을 고른 후 주문하기를 눌렀다.
2021 탁상 달력은 어쩌다 얻은 보통의 탁상 달력이었는데, 특별한 건 전혀 없었고 깔끔했고 군더더기 없어 잘 사용했다. 녹색이 대부분인 그 달력을 난 수첩처럼, 플래너처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스케줄을 꼼꼼하게 체크해 놓고 그때그때마다 펜을 꺼내 그 옆에다 ok.와 함께 동그라미를 그려 넣어줬다. 일종의 나의 의식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늘 비장했다.
그렇게 지난 1년을 달려왔다. 어찌나 잘 썼던지 비에 젖어 자연히 말려지면서 생긴 쭈글한 자국과 조금의 커피 자국이며, 스티커 붙여 놓은 것 하며, 수정테이프로 지운 자국 하며, 역사처럼 그대로 남아있다. 한 달여 남은 기간 동안 빽빽하게 마저 잘 사용하고선 작별을 고할 참이다.
1월부터 11월까지 나의 지난 스케줄들을 보고 있자니, 나의 기록이 또 나의 기록이 적힌 이 탁상 달력이 어찌나 보물 같은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지난 내 노트들과 함께 이 탁상 달력도 그들과 함께 놓일 예정이다. 한 장 한 장 아주 천천히 넘겨보았다. 시간과 만나는 사람과 해야 할 업무를 압축해서 그날의 네모칸에 내가 알아보기 쉽게 나만의 언어로 적어 넣는데 그걸 보면서 이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었지. 괜스레 미소 지어 보인다.
몰입하며 산 올해의 나에게, 12월 생일 즈음 그리고 마지막 날 즈음, 한 번에 날 위한 선물 하나 해줘야지.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제 절친 상금 언니와 통화하다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열심히 산 나에게 선물 하나 해주려고!" 그러자 언니는 "뭐 해줄 건데? 가방?(웃음)"이라고 물었다. 난 고민 없이 "운동화 하나 예쁜 거 살 거야."라고 말했다. 언니는 예상과는 달리 내 대답이 너무 시시하고 싱겁다는 목소리였다.
내게 주는 선물은 또 내가 말하는 선물은 비싸거나 내게 과분한 류의 선물이 아니다. 그저 최근의 내가 사고 싶은, 사면 기분 좋아질 그런 류의 선물을 말한다. 그래서 요즘 맘에 드는 운동화를 미리 골라놓으랴 정신이 없다.
생각해보니 탁상 달력을 내 돈 주고 사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행 다닐 땐 내 앞으로 기본 5-6개의 달력은 나왔고 그땐 그걸 왜 그렇게 얻기 쉬운 거라 생각했는지 지금은 이렇게도 공짜로는 구하기 어려운 것인데 말이다.
경험으로 돌고 돌아 나와 가장 잘 맞는 플래너는 그 어떤 것도 아닌 탁상 달력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계속 써오고 있다. 원래 깨작깨작 아기자기하게 수첩이나 다이어리에 적거나 하는 귀엽고 꼼꼼한 성미가 아닌 데다 시원시원하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체크해야 하는 급한 성미인 내게는 이만한 게 없다는 결론이다.
지난 1년 동안 이 탁상 달력의 엄청난 위력을 몸소 경험한 바, 2022년도 놓칠 리 없었다. 어제 주문한 탁상 달력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큰 고민이나 추가 검색 없이 선택했기에 이번 탁상 달력과 나. 이건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카카오프렌즈가 잔뜩 그려진 노랑과 녹색이 골고루 섞인 탁상 달력이다. 원래 카카오 캐릭터를 좋아하기도 하고 속지도 보니 자꾸 무언가를 적고 싶은 욕구가 들어 이거다 싶었다.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탁상 달력 값만 2700원, 배송비 3000원, 총 5700원에 이 걸 사다니. 내 돈 쓰는데도 무언가 이득 보는 듯한 기분인 건 무어람.
색상은 노랑+연두, 핑크 두 가지였는데 2021 녹색 달력이 내게 행운을 준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기에 기분상 느낌상 이번에도 녹색이 나랑 잘 맞는 듯. 하며 노랑+연두로 골랐다. 2022년 이번 달력도 날 무탈하게 잘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탁상 달력에 내 하루 일과를 기록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빼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됐다. 적을 때마다 느끼는 살아있음, 존재의식, 성취감 등 모든 걸 매 시간, 매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어찌 빼먹을 수 있겠냐며. 늘 스스로에게 말한다.
띵동. 하고 메시지가 울렸다. 어제 주문한 탁상 달력이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는 메시지다. 배송까지 빠르다니. 느낌이 좋아. 이러면서 이렇게 난 또 작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