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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Feb 26. 2022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하여

요즘 들어 가끔 아니 종종 내 젊은 시절, 청춘, 소위 리즈 시절이 이렇게 다 지나가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조금은 뭐랄까. 이렇게 총알같이 지나가는 시절이었던 거라면 그때 좀 더 신나게 용기 있게 좀 더 화끈하게 내 인생 즐겨볼 걸 그랬어!.라는 생각이 든다.

 

객관화된 수치 뭐 그리 중요한가. 할 때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내 나이 숫자를 곱씹어 보는 것 같아, 나이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내가 조금은 못 미덥다. 그럴 때마다 그러지 않으려 바짝 고삐를 잡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한 새벽녘 창밖을 바라보다, 사진첩을 둘러보다, 지나간 일기장을 뒤적이다, 그 시절 나와 함께 울고 웃었던 주옥같은 발라드 노래들을 듣고 있자면,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는 건 나도 어찌할 수가 없다.


내 사진첩엔 유독 나의 뒷모습 사진이 많다. 지나간 사랑들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찍어준 것들도 고 의도적으로 내 뒷모습을 남기고 싶어 찍은 것도 있다. 나는 정면 사진보다는 내 뒷모습 사진에 대한 애정이 깊은 편인데, 내 뒷모습... 찍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볼 수 없는 것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뒷모습에서 그렇게 나는 자주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내 뒷모습은 마치 내게 나는 너의 마음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쓸쓸함, 외로움, 상처, 고독, 상실감, 행복, 기쁨, 환희 그 모든 감정들이 시시각각 연주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 내 뒷모습을 통해 나는 나를 위로했고 내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부쩍 장소가 왜 이리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추억이 구석구석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20대 청춘, 30대 청춘 나의 그 모든 것이 서울 시내 곳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변한 건 나뿐인 건가 싶다. 광화문, 종로, 을지로, 여의도, 마포, 상수역, 합정, 강남, 효자동, 통인동, 압구정, 한강시민공원... 이제는 그 장소를 거닐 때면 옛 추억이 생각나는 나이가 된 듯하다. 사실 씁쓸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문득 지금 내 머릿속을 스친 장면은, 오전 6시에 맞던 찬란하고 반짝였던 아침 햇살 그리고 한강시민공원 길인데 본점 근무 당시 꽤나 부지런했던 나는 유연근무제를 썼고 오전 8시에 출근해서 4시 30분에 일을 마쳤었다. 매일 아침 집에서 6시 15분쯤 나와 한강시민공원을 따라 여의도역까지 천천히 여유 있게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어 그곳에서 다시 광화문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오피스에 가장 먼저 출근해 아무도 없는 내 자리에 앉아 피시를 켜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 내겐 소소한 행복이었다. 내가 바삐 일하기도 나를 잘 꾸미기도 했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기도 하다.

 

2019년, 3년 전쯤 갓 입사한 94년 생 주니어들과 대화를 하다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내가 신입이던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주장들과 그들이 들려준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와우, 우리 때와는 정말 다르구나를 여실히 느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했던 생각은, 80년대 후반 생인 나 때와는 또 다른 모습에서, 자기표현과 생각과 주장이 과감한 그들의 모습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참 다행이고 좋다, 심지어 통쾌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회사원 시절, 멘토님들이나 CE분들은 내게 자주 "우리 초아는 10년을 앞서가... 10년 후엔 너 같은 인재가 이곳에서 빛을 발할 거야. 그때까지만 조금만 참고 버텨."라는 말을 해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어쩌면 내가 94년 생 후배들에게서 보았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아주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던 마흔.이라는 숫자가 곧 돌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종종 날 심심치 않게 내 안을 잠식할 때가 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으려 노력한다. 일과 사랑, 사람과 삶...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해 이렇게 매 순간 추억하고 아름답게 기억하고 또 그 모든 경험을 사랑하고 감사해하며 소중히 여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내 나름대로의 삶을 잘 살아왔을 거라는 위안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지난 시절의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지금이, 오늘이 또 언젠가는 내가 소중히 기억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날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내 미래를 과하게 예측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으며 현재에 집중하며 오롯이 오늘을 살려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을 영롱하게 또릿하게 보내는 내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갖은 경험이 켭켭이 쌓여서 이기도 하겠지만 어린 시절의 무모함이 신중함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호기롭던 무모함도 용기였겠지만 지금의 성숙함과 신중함이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미 다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한 나의 회상이 이제는 길을 걷다 가다도 날 환하게 미소 짓게 하는 보물상자가 되었다. 후회되는 부분은 후회되는 부분 그대로 흘러내려 버릴 수 있을 만큼 나는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받았다는 입장에서

상처 주었다는 입장으로 가는 것.

상처 준 걸 알아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노희경 작가의 말에 공감하는 이유다.


마흔이 되려면 아직 조금은 시간이 남은 셈인데, 우선은 마흔이 될 때까지 더는 후회하지 않게 앞만 보고 달려가 보고 싶다. 그러다 마흔이 되었을 때, 다시 한번 내 삶을 반추하고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용기 내 하고 싶다는 마음까지도 함께 담아둔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날들을 위하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 날들을 위하여. 샹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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