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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의 소비

by miu

지금 이 곳에 살아서, 이 동네에 살아서 아쉬운 거라면 코스트코가 멀리 있다는 점이다. 대신 조금만 부지런하면 새벽시장, 재래시장에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양껏 살 수 있는 소소한 낭만을 갖게 됐다. 부지런을 떨며 새벽 6시쯤 가보면 이미 그곳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아주머니들께서 할머니들께서 애호박 3개를 사면 작은 것 하나를 더, 감자 5개 사면 하나 더, 청양고추 3,000원치를 사면 바구니가 넘치도록 주시는 건, 덤이고 정이다. 오고 가는 그런 소소한 정.과 마음 하나에 나는 행복해하고 감사해한다.


그제 새벽시장에 나가 장을 보며 느꼈다. 삶이라는 생생한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생명 혹은 생명력의 비비드함이랄까.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할머니들에게서 느껴지는 노동에 대한 숭고함까지. 나도 이와 같은 사람이라서 인간적인 삶의 현장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을 통찰하게 된다.


무튼 그제, 애호박, 감자, 양파, 대파, 고추, 가지, 생미역, 아보카도, 시금치 등등 장바구니에 넘치도록 담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마트보다 저렴한 것은 물론 재래시장에서 파는 것이라면 으레 친환경적, 농산물, 건강한 먹을거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야외에서 펼쳐지는 새벽시장은 직접 농산물을 재배해 내놓고 파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데다 자연스레 묻어있는 흙만 봐도 땅에서 갓 재배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새벽시장을 다녀 온 후, 오전에 주문한 오븐이 도착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안하게 된 지 조금 되었던터라 굵직한 거라면 이번 오븐 구매가 아주 간만의 소비라면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잘 쓰던 오븐도 세월이 가며 왜 늙지 않겠는가. 새로 구입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차제에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지 내게 꼭 필요한 것.에는 망설임없이 소비한다.


치즈 덕후인 나로서는 유럽에 비해 다소가 아니라 훨씬 비싼 치즈 가격이 못내 아쉽지만, 치즈도 잊지 않고 구매했다. 파리 살 때, 봉막셰나 모노프리에서 좋아하는 치즈와 버터를 덥썩 사던 나였다. 도착한 오븐은 원래 쓰던거라 특별한 건 없었고 낡아진 걸 비우고 이것으로 그 자리를 채웠다. 오늘 아침은 시금치 프리타타를 해 먹을 참이다.


겨울에 나는 건 시금치가 아니라 섬초라고 하는데 아주머니께서 겉으로 봐선 시금치와 무어가 다를까 싶지만, 섬초가 시금치보다 조금 달고 생긴모양과 길이가 더 짧다고 설명해주셨다. 요리할 때 가장 즐거운 나는, 아침부터 사부작사부작 시금치 프리타타를 만들 생각에 설렌다. 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만들고 예쁜 그릇에 담아내는 것까지 그 모든 과정이 내겐 사랑이자 명상 혹은 수양과도 같달까.


오랜만에 꼬꼬뱅도 해볼까 싶기도 하고. 라구 소스도 만들어 볼까. 바질 페스토를 좀 만들어 놓을까. 어제 우연히 길가다 발견한 빵집에서 치아바타도 샀다. 1유로 안팎이면 윈 바게트 내지 드미 바게트를 일상처럼 샀던 파리에서의 내 모습도 오버랩됐다. 집에서 3분 거리 골목엔 아기자기하면서도 느낌 있는 불랑제리가 있었는데 아침에 가면 그곳에 닿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도 버터 냄새가 빵굽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그런 감성도 그리워진다.


갖은 음식을 요리하는 데에는 넘치는 흥미를 가졌는데 희한하리만치 제과나 제빵에는 영 관심 없다는 게 의뭉스러울때가 있다. 빵은 사먹는 걸로. 정확히 계량하는 것보다 뭐든 훅훅 툭툭하는 내 성미와 관련있음이 틀림없다. 친구 제시카가 종종 꺄눌레를 직접 만들어 가져다 주곤 했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꺄눌레 중 단연 최고였다. 얼마 전 제시카가 올해 12살 된 딸 호만이 이제 숙녀가 되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제시카가 키우는 고양이 빅터도 그때보다 살이 이렇게나 쪘다며 그녀의 문자에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냉장고를 보니 어제 먹다 남은 버섯도 조금 있고 우선은 남아있는 재료들을 탈탈 털어 프리타타를 맛깔나게 만들어보아야 겠다. 일요일 아침, 믹스 커피 한 잔에 노래 멜로디 하나에 내 마음은 평온해졌고 살뜰해졌다.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단출하게 소소하게 찬란하게 나답게 내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으로 내 일상을 맛깔나게 요리하는 것. 행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요즘 나의 행동 기준은 이러하다. 내가 하면 기분좋아지는 것들... 고로 오늘은 행복한 날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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