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 알랭드보통의 불안.을 꺼내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소파에 앉아 30분 정도 읽었다. 기상 직후 정신이 아직까지는 제자리를 찾지 못할 때, 몽롱할 때 책을 읽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곧 정신이 멀쩡해지고 파릇파릇해진다. 알랭드보통의 책을 읽다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의 그의 영리한 통찰과 해석에 감탄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그의 불안.에 대한 명료한 해석 덕분에 이에 대한 내 생각도 말랑말랑해진 듯하다. 책 읽기 그리고 단 삼십분의 마법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던 중 수진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지난 주 삼청동에서 전시를 마친 언니의 반가운 연락이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탓에 가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전시 동영상과 사진을 언니가 직접 찍어 보내왔다. 언니와의 인연도 내가 대학생때이니 꽤 오래되었다. 나를 잘 아는 언니는 늘 그랬듯 무심하게 그러나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내게 안부를 묻는다. 그러던 중 언니가 이거 먹으라며 투썸 케이크와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냈다. 늘 이런식인 언니에게 난 늘 감동받고 고마워한다.
안그래도 얼마 전 언니랑 통화하다 네가 제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할 때 되지 않았니. 아기도 낳아야지.등등 잔소리를 했는데 며칠 전엔 소개팅 제안까지 했더랬다. 정외과 교수인 남편한테 초아 소개팅할 남자를 신신당부해서 받았다고 했다. 언니는 나의 성향과 성미를 너무 잘 알기에, 내 스타일을 너무 잘 아는지라 보여주자 아닌 것 같다고 했단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내게 물어봤다고 했다. 그렇게 내 결혼에 진심.인 언니다. 그런 마음이 나는 그저 고맙다.
이십대 후반 삼십 대 초반이던 때 친구들이 한창 결혼하기 시작할 때, 부캐도 꽤 받았는데 내가 결혼이 늦어질 줄은 솔직히 몰랐다. 결국엔 내 선택이었겠지만, 무튼 결혼에 나이가 어디 있으랴.싶다. 해가 바뀌고 나니 요즘 이런 연락들이 잦다. 나는 그때마다 "인연은 있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한 번은 그랬더니 베프인 미리(미리는 결혼했다)는 "초아야, 인연도 만드는거야! 노력하는거야!" 하고 핀잔을 줬다.
친한 친구들, 언니들도 결국엔 다 간 걸 보면, 알면서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는 나.라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이 된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것과 인생이라는 여정을 함께 걸어나갈 사람을 찾고 있다는 설명이 맞겠다. 결혼이란, 부부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도 일리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같은 곳을 함께 걸어나가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무튼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지니 외려 덤덤해져 큰일이다.
사랑에 나이가 어디있으랴.는 생각까지. 이십대의 사랑과 삼십대의 사랑은 그 분위기만 다를 뿐,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열정적이고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외려 삼십대 사십대의 사랑이 더 진하고 성숙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설 명절은 코앞이고 1월의 반도 지났다. 시간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아버린 나머지. 이조차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요즘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정도로 쏜살같은 시간이 못내 아쉽기도 하고 때로는 이 시간을 앙칼지게 사용하자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하여 후회한다거나 아쉬워하는 것 따위의 미련함을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도 잊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곧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책도 가끔 다시 들여다보곤 한다. 나는 수시로 내 스스로에게 묻는다. "잘하고 있지? 잘하고 있는 거겠지? 너는 어떻니? 네 마음은 어떻니? 요즘 네 마음은 어때? 네 기분은 어떠니?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 갖은 질문을 한다.
어제는 잠들기전 법정스님의 강연을 들었다. "본질적인 삶을 살라. 직선으로 살지 말고 곡선으로 살라. 저마다 자신의 삶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긴다.
법정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내 삶의 질서를 지키며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며 본질적인 삶을 살려 노력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며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다. 곡선으로 산다는 것. 고로 너는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내 스스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일하러 가기 전, 오늘의 선곡은 윤종신의 너에게 간다.로 정했다. 노래 가사와는 별개로 인트로의 멜로디가 언제나 날 설레게 하고 감동시킨다.
나가기 전 서둘러 도시락을 싸야겠다. 나를 위한 밥을 짓는 일에, 오늘의 내 기분과 생각과 태도를 어김없이 담아낸다. "초아, 잘 살고 있어! 그러니까 쫄지마!"라고 포스트잇에 적어놓았다. 도시락 통에 붙일 참이다. 오늘 오후 도시락통을 꺼내들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마음가짐과 다짐을 상기할 것이며 이 마저도 낭만적이라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기분좋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사는 게 별 건가. 사는 낭만이 별거던가. 뚜벅뚜벅 도시락 싸러 부엌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