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리집

by miu

에밀리 인 패리스.를 보고 있자면 내가 살던 동네가 나올때면, 익숙하게 매일 걷던 골목길, 거리들이 나올때면 어맛어맛. 그대로네. 그땐 그랬지. 그때가 좋았네.하며 그 시절을 추억하기 바쁘다. 그럴땐 참 시간이 쏜살같다는 생각과 이럴 거였더라면 아주 더 화끈하게 신나게 재미있게 그 시간을 보냈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3구 마레지구, arts et metier.(아흐제 메티에)역이 코앞이었고 조르주 퐁피두 도서관은 집에서 5분 거리면 닿았다. 피카소 박물관, 생마르탱 운하도 10분거리면 닿았고 오뗄드빌(시청)역, 샤틀레, 센강, 루브르 박물관도 걸어서 10-15분이면 닿는 거리에 살았다. 위치상 파리 중심인 3구에 살았고 지금보다도 더 완전하게 완벽한 뚜벅이였던 내게는 최적의 위치였으며 뚜벅이.생활을 감안해 고르고 고른 집이었다.


그 집을 구하기 전 꽤나 고생했다. 파리에서 집을 구하기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고 후덜덜한 집값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컨디션에 조금이라도 더 낮은 월세집을 찾아 발품을 파는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살고 싶었던 동네 중 하나는 7구, 16구였는데 두 동네 모두 조용한데다 아기자기한 카페들도 많고 완전하게 파리스러운 동네랄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800년대, 1900년대 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다른 어느 동네보다도 빈티지스럽고 그러면서도 세련됨과 클래씨함이 동시에 넘쳐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16구는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전 남자친구의 누나가 만날 때마다 본인이 세놓고 있는 16구집, 학교 이야기들을 자주 들려주기도 했어서 익숙한 동네이기도 했다.


16구는 내 생활반경과는 멀었을 뿐만아니라, 보는 집집마다 내 예산보다 훌쩍 넘어버리기 일쑤여서, 또 그닥 마음이 당기지 않아서 이내 생각을 접었고, 7구나 5구(판테옹이 있고 대학가라 뭔가 클래식하고 조용하면서도 젊은 느낌이 있는 동네다), 3구로 좁혀 나갔다. 기억에 남았던 건, 세로제에서 마음에 든 집을 발견하고선 곧장 다음날 중개업자인 제롬과 헝데부를 잡았다. 그곳의 모든 게 처음이었던지라 나는 그와 1:1로 집을 둘러볼 거라는 생각이었고 마음에 들면 꼼꼼히 살펴본 후 계약해야지.했던 참이었다.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는데 분명 주소가 이곳이 맞는데 문 앞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게 아닌가. 알고보니 모두가 그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나를 빼곤 모두들 그 광경이 익숙한 듯 오는 차례대로 일렬로 줄을 섰고 5명씩 차례로 집을 둘러보는게 룰이었다. 내 뒤에 섰던 현지인 대학생 왈, 나를 제외한 모두가 파리 현지인들인데다, 현지인을 제치고 내가 연락을 받을 확률이 지극히 적을 거라는 이야기도 넌지시 해줬다.


다행인지 집의 상태나 여러 컨디션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서류 제출도 하지 않고 그냥 나왔다. 내겐 참 색다른 풍경이자 경험이었다. 그 후 어찌어찌 나름 발품팔아 3구 집으로 이사오게 됐다. 3구 집에 이사온 날, 짐을 풀며 든 나의 소감은, "드뎌 찾았구나. 내 집이구나. 집도 다 인연이 있는 법. 네가 내 운명이었구나. 인연이었구나."였다. 무튼 안도했다.


파리.하면 나는 왜이리도 할 말이 많아지는지. 쏟아지는지. 아직도 이야기 보따리들이 한 트럭.이다. 해도해도 부족할 판이다. 그마만큼 추억할만한 좋은 기억들이 많았다는 뜻이겠지... 미소 짓는다. 조금 더 많은 걸 기록하고 사진으로도 담아둘 걸.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때도 요리하는 걸 참 좋아했는데... 내 스타일의, 내 취향의 요리를 하기에 재료도 그렇고 부엌이나 오븐도 그렇고 그만한 공간이 없었는데. 그 시절 내게 그 집은, 그 부엌은 친구였고 지리멸렬하게 방황하던 내 마음을 잠시라도 차분하게 머물수 있게한, 마법의 장소였다.


파리지엔 친구 제시카말에 의하면, 요즘 파리는 11구가 그렇게 핫하다고 한다. 내가 살던 당시에도 11구에 힙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겨서 우리나라로 치면 성수동같달까. 젊음의 장소로 점점 힙해져갔을 때였는데, 제시카도 지난해 3구에서 11구로 곧장 이사했다고 소식을 전해왔었다.


내가 살던 파리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다가도 금세 달콤한 카페라떼로 변신해버리기 일쑤인 곳이었다. 낭만적이라는 파리에 살면서조차 마냥 행복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기에, 내 마음은 어둠일 때가 더 많았기에, 그곳에 살면서 나는 많은 걸 깨닫게 됐다.


내가 어디에 사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어디에, 어느 동네에, 큰 집에, 작은 집에...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처절하게 여실히 깨닫게 됐다.


내 안에 답이 있었고 낭만적인 장소도 내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한다는 것. 내 마음이 낭만적이게 될 때, 내 마음이 평온할 때, 안정될 때, 평안할 때야 비로소 내가 사는 집도 내가 사는 공간도 낭만적이게 된다는 걸 나는 그렇게 알게 되었다.


더불어 내 마음이 거센 파도와 마주하게 될 때 나는, 그 파도를 어떻게서든 피하기 위해, 어떻게서든 이 파도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지 않게 됐다. 대신, 그 파도 위에 날 내맡겨 그 파도를 타고 일어서 서핑하는 단단한 내가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내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돼가고 있는 나의 성장에, 나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하루에도 몇 번을 감사해한다.


나의 모든 경험이 이토록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기쁨이었든 행복이었든, 슬픔이었든 불행이었든 나의 모든 경험은 내게 하나같이 소중한 교훈을 주고 떠났다는 것. 그 교훈과 배움을 딛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섰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어떨땐 내 자신이 이토록 대견할 수가 없다.


돌고 돌아 지금의 내가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지금의 나.를 내 인생 제2막이라 말해도 좋을 만큼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다.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기도 했던 파리에서의 삶...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파리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게 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안으로의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