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찾아오면, 이부자리를 켜곤 불을 켠다. 불을 켤 때, 탁.하고 나는 소리가 남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마치 탁.하는 순간 새로 태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탁.하면 무대에서 새로운 커튼이 열리는 듯한 기분에 마치 새 옷을 입고 새 무대에 반짝하고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라는 설명이 맞겠다.
여느 아침처럼 오늘도 기상 직후,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야물게 했다. 몸 근육이 쫙쫙 당기는 느낌에 살아있음에. "I'm still alive. thanks!"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늘은 스트레칭과 잠깐의 명상 후에 곧장 오븐을 켰다. 어제 문득 직접 빵을 굽지 뭐.싶었고 늦은 밤, 몇 번의 휴지를 거쳐 저온숙성을 시켜놨다. 오븐을 켜고 예열온도를 230도로 맞췄다. 오븐에 불이 탁 켜지는 소리, 오븐 돌아가는 소리는 언제나 내겐 설렘이다.
파리 내가 살던 집 퀴진이 어김없이 오버랩된다. 롱고에 각설탕 하나를 톡 털어놓고 휘이 저은 후, 한 모금 후 오븐을 켜는 일.이 내겐 일상이었고 파리살던 시절 요리는 내 친구이자 낙이었다.
한식이나 양식은 뭐든 뚝딱 잘 만드는 편인데, 희한하게 베이킹엔 영 관심이 없고 베이킹이란 정확한 계량에 딱 맞춰해야만 하는 다소 복잡한, 번거로운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사워도워나 통밀빵 정도는 직접 만들어 먹어도 되거늘, 난 늘 이른 아침 집 앞 불랑제리에 가서 드미 바게뜨를 사왔었다. 지금도 이것들이 당길때는, 동네 작은 불랑제리에서 그때그때 사온다.
웬일인지. 직접 만들자.싶어 무튼 반죽을 만들었다. 아침에 확인해보니, 보기 좋게 숙성된 듯, 부풀어 오르면서 모양이 잘 잡혔고 반죽도 깨끗하게 떼어진다. 예열된 오븐에 넣어 25분 정도 구웠다. 겉이 바삭바삭한 걸 좋아하는 취향으로, 충분히 노릇노릇하게 될 때까지 바삭하게 바짝 구웠다. 모양은 뭐 울퉁불퉁에 뒤죽박죽 당최 이 빵이 어떤 빵인 것인가.싶을 정도로 설명 되지 않는 모양새지만, 맛은 구수했고 올리브유, 발사믹 믹스에 찍어 먹으니 좋은 맛이 났다.
오늘 아침 구운 Pain.(빵) 투박해서 좋았다. 튜나마요 베이스로 오픈 샌드위치를 먹을까 하다, 모양이 넓적하게 나오지 않은 이유로, 이내 식전빵처럼 먹기로 했고, 만족스러운 아침 식사를 했다. 오늘은 아메리카노가 믹스커피를 대신하기로 한다.
생각보다 재밌는 작업이었다. 오븐을 빵굽는 용도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나름 성공적이었다. 8시가 되기도 전, 나는 통밀빵 하나를 구운 셈인데. 캘린더에 통밀빵 만들기.라고 적어놓은 걸 쓰윽 지웠다. 작지만 소소하지만 계획했던 일 하나를 벌써 한 셈이다. 오늘 하기로 마음 먹은 나머지 일들에 대해서도 에너지가 됐다.
파리 살 때 참 좋아했던 그래서 자주 찾았던 점심 메뉴가 있는데, 프랑프리(모노프리처럼 프랑스의 대중적인 슈퍼마켓 중 하나다)에서 파는 닭고기와 그리지한, 잔뜩 기름진 폭폭하게 폭삭 익은 포테이토 슬라이스 조합의 도시락이었다. 지금도 먹고 싶을 땐, 바로 해먹는 메뉴 중 하나다.
오븐을 켠다는 건, 내겐 추억을 켜는 일이기도 하다. 요리도 수양이다.라는 생각은 오븐을 켜는 일에도, 재료를 손질하고 준비하고 썰고 굽고 삶고 볶는 그 어느 과정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게 한다. 내 요리에 나는 내 에너지와 기운과 내 태도를 담는다.
오늘 아침 당최 정체모를 이 빵을 구우면서는, 멋스러운 모양을 꼭 내리라.는 혹은 꼭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사실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저 요즘 내가 사는 태도처럼, 무심하게. 그냥 해보지 뭐. 어떻게든 빵은 나오지 않을까. 무슨 모양이든 어때. 빵이면 그만이지. 나오기만 해랏. 이런 마음가짐으로 집착없이 했더니 모양이 보통의 것과는 달라도 전혀 아쉬움이나 속상함도 없었다. 빵만들기 실패.라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외려, 이마저도 다소 완벽하지 않는 내 성향과 성미와 꼭 맞게 나왔다며. 어쩜 빵도 나답냐며 미소짓고 말았는데. 올리브유 발사믹 믹스와 함께 찍어먹으니 이만한 게 내겐 없었다. 내가 만족했으면 오케이. 그러면 되었다는 생각이 역시나 오늘 아침 식사에도 반영됐다.
사실 요 며칠새 내 마음에 아주 변덕스럽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비가 내렸던 참이었는데, 애써 나를 다독이며 알아차리며 깨어있으며 내 안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반죽하는 과정에서, 반죽을 내 손으로 느끼며 치대는 과정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달까. 이따금씩 찾아오는 도저히 모르겠는, 부정적인 감정들이란, 역시 너희들은 실체가 없구나. 실체가 없는 것이었어!. 바이!. 라고 떠나보냈다.
무튼 지금의 나는, 그 끝은 어떻게서든 이런 감정들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다 일시적일 뿐이다. 아침에 오븐을 켜니, 게다가 안하던, 안해보던 베이킹 용도로 오븐을 켜보니, 생각보다 재밌고 새로운 재미를 발견했다. 이처럼, 오늘 아침 오븐을 켜면서 점차 부풀어 오르며 몸집이 커지는 오븐 안 반죽을 지켜보다, 완성된 빵을 보며 나는 이렇게 또 내 삶을 반추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생각 난 김에, 망설이지 말고 했더니, 해봤더니 뚝딱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물론 새로운 재미와 기쁨을 발견한 것, 지레 짐작해 망설이다, 시도조차 안해보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해보니 이런 재미가 쏠쏠하다는 걸 알게 된 걸, 고로 뭐든 편견없이. 지레 짐작해 판단하지 말 것.등... 이모저모 다양한 관점과 시선과 사유로 나와 내 삶을 관조하자.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사물이나 작은 행위 하나에도 깨달음이 인다. 이런 나라서 그런지, 사방이 온통 사유할 것, 통찰할 것들로 가득하다. 이 조차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진심으로 감사하니, 진심으로 감사한 일들이 내게 더 큰 선물로 배로 되어 돌아온다는 걸 나는 증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오븐을 여닫으며, 파리 살던 때 내 집 부엌의 오븐을 여닫던 그 시절 내 모습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듯 몇 년 전의 나.로 돌아갔고 차제에 그 추억에 흠뻑 젖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