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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Mar 31. 2023

깊어보인다는 말

연어로 아주 맛있고 깔끔한 저녁을 했다. 여러명이서 함께 한 식사였고 꽤 즐거웠다. 분위기가 무르익던 찰나 내 앞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깊어 보이세요." 


앗, 나도 모르게 활짝 미소지어보이면서도 깊어보인다.는 말에 꽂혔다. 일적으로 만난 사이였고 나와 이렇게 대화를 나눠본 적은 처음인데 날 봤을 때부터 무언가 깊어보였다.고 했다. 또 다른 분이 이 말을 듣고선  덧붙였다. 조용하고 목소리도 차분하고 그러면서 말도 천천히 요리조리 잘 하시는 것 같다.고 했다. 딱 표현이 그러했다. 


개인적으론 특히 깊어보인다.는 말은 최근 내가 들었던 말 중 최고의 칭찬 같았다. 다행이었다. 안도했다. 내 평소 바람이 잘 돼가고 있는 방증같아서. 이십대땐 참 밝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십년 새 나도 참 많이 변한건가.싶다.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깊어보인다는 거. 잠시 상념에 젖은 나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 나의 개인적인, 지극히 사적인 것에 관해선 굳이. 그리고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것. 그러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말을 줄인 것.(말 줄이는 건 건의도한 것도 있고 절로 그리된 것도 있다. 살면서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말을 줄이는 편이 내겐 훨씬 유리하단 걸 깨닫게 됐다). 말을 하기보단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이런 내 모습이 깊어보인다. 혹은 조용하고 차분해보인다.는 내 이미지에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싶다. 


사실이 그러하다. 지금의 나는 조용하다. 차분하다. 말이 많지 않다. 책을 통해 사유의 넓이와 폭 그리고 시선의 높이를 확장하는데 관심이 있다. 오늘 들은 이 말이 나는 참으로 반갑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겸손해졌고 아주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치명적인 엄청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나를 다스리게 되면서부터 그리 되었다. 날 구하기 위해, 살기 위해 내 안의 나에게 묻고 또 묻고 내 나름 치열한 과정 속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였다. 


내 모습과 행색은 나이 들어 갈수록 더 수수해지고 싶고 그러면서도 내 분위기와 기운은, 아우라는 더 맑게 깨끗하게 아름답게 빛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수수하고 단출한 외면에 내면의 빛이 서로 기가막힌 밸런스로 나를 멋진 사람으로 멋진 인간으로 만들어 주기를 난 늘 고대한다. 


순수.에 대한 애정도 깊은데. 고백컨대 타고나길 청순과는 거리가 먼 이목구비를 가졌는데. 아무렴 어떤가. 요즘의 날 보면 순수.를 잃지 않으려는 나의 부지런함과 노력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외면으로 드러나고 있는건가.싶을 때가 있다. 


날 낮출수록, 사람과 세상에 대해 겸손해질 수록 왜 나는 더 빛나는 걸까. 이 사실을 진즉이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싶지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세상이 내게 좀 더 유리하게 돌아갔을까.(그렇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나이 들어갈수록 세상사에 한없이 겸허해지고 초연해지는 내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든다. 


돌이켜보면 어느 것하나 교훈이 아니지 않은 것은 없었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행운이었든 불행이었든 결국 그 끝은 어떻게서든 내게 이로운 방식으로 삶을 깨닫게 해주지 않았나.싶다. 


그걸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더 큰 도약을 하느냐.마느냐.도 결국 내게 달렸다. 무튼 오늘 "깊어보인다."는 이 말 한마디가 내겐 왜 이리도 깊게 크게 와닿았는지. 개인적으론 아주 기분좋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상대의 눈만 봐도, 상대의 목소리만 들어봐도, 상대의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분위기와 기운이 곧잘 읽혀지곤 하는데 오늘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그 무게를 실감하는, 깨어있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나의 욕망은 이토록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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