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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에 비친 우산의 슬픈 얼굴

아이의 맑고 순수한 시선

by 행복수집가

비가 왔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 안 손잡이에 우산이 하나 걸려 있었다. 아마 누가 놓고 간 것 같았다.


수지는 그 우산을 발견하고, ”어, 엄마 우산이다 “라고 말했다. 나는 누가 놓고 간 것 같다며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데 우산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수지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우산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


“응? 우산이 슬픈 얼굴이야? “


“응. 봐봐. 얼굴이 슬퍼. 혼자 여기 있으면 무섭겠다.”


너무나 순수한 시선으로 우산을 바라보는 수지의 말에 머리를 한대 띵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수지는 슬픈 얼굴이라는 우산을 보며, 엘리베이터 안에 혼자 있으면 무섭겠다고 걱정했다. 수지의 말에 내 마음은 몽글몽글 해지며 녹아내렸다.


아이는 물건에 있는 얼굴도 본다. 이건 정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눈을 가져야만 볼 수 있는 얼굴이지 않을까.


나는 누가 놓고 간 검은 우산이 그냥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으로 봤는데, 수지는 내가 보지 못한 우산의 슬픈 얼굴도 봤다. 보이는 것 너머의 또 다른 것을 보는 아이의 말은 시가 되는 것 같다.


아이의 맑고 깨끗한 마음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 깊숙한 곳까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아이는 무심코 바라본 어떤 대상에게서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 신비로움, 슬픔, 기쁨을 찾아낸다. 이런 아이 옆에 있으면서 내 시선도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의 순수함이 나를 정화시키고, 그 덕분에 나는 이 세상을 조금 더 맑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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