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것도 소중한 경험이 된다
수지가 이번 연휴 동안 열심히 잘 놀아서인지, 어제저녁부터 기침을 하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바로 병원을 가려고 했는데, 병원 똑닥 접수에 실패해서 오전에 가지 못했다. 우리가 가는 소아과는 똑닥으로 진료 접수하는데 예약 성공이 정말 1초 컷이다. 정확한 시간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 타임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빠른 건지 1-2초 안에 실패와 성공이 나뉜다.
(똑닥 : 병원 접수/예약 서비스 어플)
그래서 아이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은 늘 가슴 졸이며 똑닥이 열리기 5분 전부터 대기를 하면서 새로고침을 한다. 오늘 오전에 남편과 나는 알람까지 맞춰놓고 병원 접수를 하려고 만만의 준비를 했는데, 둘 다 허무하게 실패했다.
똑닥 접수 안 하고 바로 가서 현장접수도 가능한 병원도 집 앞에 있지만, 몇 번의 경험으로 그 병원은 잘 가지 않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고, 자주 병원에 갈 일이 생기다 보니 병원을 다니며 느낀 것은 아무리 대기 줄이 길고, 심장 졸이는 접수를 필사적으로 해야 하더라도, 정말 꼼꼼히 오진 없이 잘 봐주며 처방해 준 약이 잘 듣는 병원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 늘 가던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갔다가 그냥 일반 감기약 처방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일반 감기가 아니라 심각한 바이러스여서 병을 더 키워서 원래 가던 병원에 가서 입원까지 한 적이 있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몇 번 있어서 이제 웬만하면 가던 병원이 아닌 접수가 쉬운 다른 병원은 잘 안 가게 된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줄을 서는 병원은 다 이유가 있다. 몇 번 가보면 체감한다.)
우리 부부는 오전 병원 접수는 하지 못해서, 오후에 다시 도전하기로 다짐하고 오전엔 산책을 가고 싶다는 수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 돌며 가을 산책을 했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 병원 예약은 성공했다! 내 앞에 대기인원은 52명이 있었다.
남편은 오후 출근이라 회사를 갔고 수지 병원 데려가는 것은 오롯이 내 책임이 되었다. 대기 인원이 10명일 때 낮잠 자던 수지를 깨워서 바로 데리고 나갔다. 병원은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아이 병원이 가까운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매번 느낀다.
병원에 무사히 도착해서 진료를 받았고 수지는 목이 많이 부었다고 했다. 그리고 열이 39도 이상 나면 병원에 와서 독감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고 기침약과 해열제를 처방해 주셨다.
진료를 받고 난 후, 수지는 기분이 좋았고 또 한 바퀴 산책 하자고해서 집에 가는 길을 일부러 둘러서 돌아가는데, 수지가 힘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수지가 열이 나고 아프니까 우리 이제 집에 갈까?” 라고 하니 수지가 그러자고 했다.
아프지 않을 때는 집에 가자 하면 싫다고, 더 놀다 갈 거라고 최대한 밖에 있으려고 버티는데, 확실히 몸이 안 좋긴 한가보다. 집에 가자는 말에 ‘응’이라고 하는 아이를 보니.
그런데 집이 가까워지자, 바로 들어가긴 또 아쉬웠는지 그네 타고 가자고 해서 놀이터에서 그네도 탔다. 그네를 타는 수지는 기분이 좋아서, 그네 탈 때마다 짓는 환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해맑은지 수지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 모든 잡생각이 사라진다. 그 웃음에만 집중하게 된다.
방금 전에 병원 가서 진료를 보고 왔는데 지금 이 순간 그네를 타며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니, 이전일은 잊게 되고 그 순간이 그저 행복했다.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놀고 집에 온 수지는 다시 열이 나기 시작했고, 힘이 없이 소파에 누워 있었다.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가를 반복하며 움직이던 아이가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몸을 만져보니 뜨거웠다. 그래서 체온을 재보니 39.1도.
다시 바로 수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39도 이상이 되면 독감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혹시 독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입원까지 각오를 하고 병원으로 갔다.
오후 진료를 보고 온 지 2시간 만이었다. 열은 나지만, 수지가 기분은 좋았는지 다시 병원 가는 길을 즐겁게 산책하듯이 즐기며 가는 수지였다.
병원 가는 길에 보이는 사람들, 풍경들에 대해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니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정말 많이 아팠으면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하거나 누워 있었을 텐데, 그래도 아이가 무언가를 보고 즐거워하고 기분이 좋은 걸 보니 이 아픔을 이길 힘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어쨋든 검사를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일이니, 마음에 각오를 하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열은 나고 있었다. 체온을 재던 간호사 선생님이 ‘열이 많네요’라고 하셨다.
몸에서 뜨거운 열을 내뿜으며 2시간 전에 진료를 봐주신 의사 선생님을 또 뵀다. 의사 선생님이 “벌써 왔어요?” 하시더니, “열이 났구나, 미안하지만 검사 좀 할게” 하셨다. 독감 검사는 코로나 검사와 방식이 비슷했다. 코 안에 기다란 면봉을 넣고 채취를 한 후, 키트를 통해 결과를 보는 거였는데 수지는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열나면 해열제를 먹이고, 열이 계속 안 떨어지면 수액을 맞거나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알겠다고 인사드리고 나왔다. 독감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저녁 진료를 받고 나오니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진료를 받고 나온 수지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병원 밑에 있는 카페에 가자고 했다. 뭘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시크릿 주주 음료수를 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잠시 카페에 앉았다 가기로 했다.
나도 서둘러 병원에 오느라 가빴던 숨과, 혹시나 하며 걱정스러웠던 마음을 따뜻한 레몬티를 마시며 진정시켰다.
우리가 갔을 때 카페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수지의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시크릿 주주 음료수를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는 수지를 보니, 나도 같이 웃음이 나고 감사했다. 지금 몸은 열이 나고 아파도, 기분이 좋은 수지를 보니 우리 아기 금방 잘 이겨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픈 와중에도 얼마나 귀엽고 이쁜지, 더 자주 안아주었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나와서 하늘에 별을 보며 걸었다. 수지와 저녁에 나온 적은 잘 없어서, 저녁 산책을 자주 하진 않았는데 오늘은 수지와 둘이 별을 보면서 선선하다 못해 조금 추운 저녁 공기를 느끼며 걸었다.
저녁 산책을 하며 보는 별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괜히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수지에게도 하늘에 별이 반짝거린다고 말하니 수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수지는 별을 보다가, 달을 찾았는데 오늘 달이 보이지 않았다.
수지가 달이 없다고 얘기해서, 내가 “달이 안 보여서 아쉽다"라고 하니, 수지가 “달이 아파서 밥 먹고 의사선생님 보러 갔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내가, “아 그런 거야? 달도 수지처럼 의사선생님 보러 갔구나” 하고 얘기했다. 그리고 또 조금 있다가 “엄마 (달) 토끼 보고 싶어?”라고 해서, “응 보고 싶어, 그런데 달 토끼가 안 보이네 오늘.”이라고 하니까 수지가 “달이 숨바꼭질하네”라고 했다.
달이 안 보이는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가며 아쉬워하는 나를 달래주는듯한 아이다. 그 생각이 기발하고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달이 숨바꼭질한다는 표현이 수지처럼 참 사랑스러웠다.
수지는 하늘에 별을 보더니 별이 계속 수지를 따라온다고 했다. 아이와 같이 별을 보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병원 진료를 두 번이나 다녀온 덕분에 나는 수지와 밤하늘을 보며 산책할 수 있었다. 밤하늘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우리는 집으로 가는 동안 오래도록 달과 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이와 함께 밤하늘을 보며 대화한 그 순간이 나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시간으로 남았다.
집에 온 수지는 저녁도 남기지 않고 잘 먹고,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시리얼 먹고 싶다고 해서 시리얼도 한 그릇 뚝딱했다. 집에 오는 길에 사 온 티니핑 색연필로 스케치북에 색칠놀이도 하고, 똘똘이 영상을 보면서 똘똘이와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이렇게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수지는 열이 나고 아팠지만 엄마와 병원에 다녀오며 카페 데이트도 하고, 밤 산책도 하며 즐거웠다. 그 시간 속 아이의 행복함이 느껴졌다.
‘아프면 어때,
옆에 이렇게 사랑하는 엄마가 있는데’
하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마음껏 아플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아이가 아픈 시간도 소중한 경험과 기억이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어느 것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하다. 이렇게 아픈 날들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