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함께한 김장, 더 따뜻했던 하루
요즘 한창 김장철이다. 우리 친정엄마도 저번 주말에 김장을 하셨고, 시댁은 어제인 월요일에 김장을 하셨다.
시댁 김장 날, 나는 회사 때문에 가지 못했지만 남편은 쉬는 날이어서 아이를 데리고 다녀왔다.
김장하러 가기 전날 나는 수지에게 "수지야, 할머니 집에 김치 만드는 거 도와주러 갈래?" 하고 묻자, 수지는 마치 재미있는 체험놀이를 하러 가는 것처럼 신난 목소리로 "응, 갈래!" 하고 대답했다.
수지의 김장을 위해 작은 사이즈 고무장갑을 사고, 앞치마도 챙겼다. 작은 장갑과 앞치마를 보니 꼭 소꿉놀이 준비물 같았다. 수지에게는 김장이 소꿉놀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댁에 가기 전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이번엔 저는 못 가지만 대신 수지를 보내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크게 웃으시며 말했다.
"큰 일꾼 보내주네~"
그렇다. 수지는 그 누구보다 '큰 일꾼'이다.
일을 잘한다는 의미의 일꾼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일꾼이라는 의미다. 김장을 하다 보면 어른들도 지칠 텐데, 작은 아이가 작은 손으로 꼬물거리며 배추를 만지고, 고무장갑 낀 채로 주변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날 것이다.
일터에서 웃음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이 또 있을까. 웃음은 가장 큰 원동력이다. 웃으며 일하면 조금 더 힘이 나고, 조금 더 즐거워진다. 수지는 그 역할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김장 당일 아침, 남편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고 있어서 비장한 마음으로 준비했지만, 수지는 그저 가볍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나는 수지에게 "오늘 김치 잘 만들고 와~" 하고 응원하며 보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 수지를 만났다.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 묻자 남편이 말했다.
"수지는 한 10분 정도 양념 바르다가, 집으로 올라가서 과자 먹고 놀았어~ 하하~ 그래도 조금 일했다고 바지에 김치양념도 묻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수지 바지에는 정말 양념 자국이 찍혀 있었다. 10분 정도 양념 바르는 척하며 놀았을 뿐인데, 그새 '일한 티'를 잔뜩 내고 있는 수지가 너무 귀여웠다.
시댁은 2층은 집, 1층은 창고로 쓰는 주택인데, 마당에서 김장을 했다. 어른들이 모두 마당에서 김장을 하는 동안 수지는 2층으로 올라가 혼자 과자 먹고 영상 보며 놀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단 10분 일하는 척하고, 나머지 시간은 놀기만 한 수지가 받은 대가는 엄청났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수지에게 용돈 10만 원과 넉넉한 과일을 챙겨주셨고, 김치도 두 통이나 보내주셨다. 일한 양에 비해 받은 대가가 아주 컸다.
사실, 수지가 일한 양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 공간에, 그 시간에 사랑스러운 손녀가 함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큰 기쁨이었다.
수지는 잘 먹고 잘 논 것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충분히 다한 셈이다. 어른들 일하는 데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 잘 놀고 있었다는 것도 기특했다.
이번에 시댁에서 받은 김장김치는 더 맛있을 것 같다.
그 김치에는 수지와 함께한 추억이, 사랑의 손길이 깊게 배어있다. 왠지 먹어보지 않아도 이미 맛있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