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원 보다 값진 천원

오만원을 천원으로 바꾼 아이

by 행복수집가

작년의 마지막 날이었던 12월 31일, 남편과 수지는 시댁에 다녀왔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해서 함께 가지 못했다.


그날 남편과 수지는 시댁 어른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함께 2025년의 마지막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수지는 용돈을 무려 20만 원이나 받아왔다.


수지는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용돈을 받곤 한다.

예전에는 용돈을 받으면 별말 없이 곧바로 나에게 건네주던 아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돈으로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돈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생기면서 용돈을 받아도 쉽게 나에게 주지 않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할아버지 댁에서 돌아오자마자 "나 돈 벌었어!" 하며 오만 원짜리 네 장을 꺼내 '짜잔' 하고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나는 수지에게 용돈 받아서 좋겠다며, 정말 대단하다고 한껏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본심을 살짝 꺼냈다.

"수지가 가지고 있으면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가지고 있을게. 그리고 수지 갖고 싶은 거 사줄게"


그러자 수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이거 내가 벌었잖아. 내가 갖고 있을 거야."


예전과는 다른 반응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다시 한번 설명하며 설득해 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용돈을 빼앗으려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여섯 살 아이가 2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고 있는 게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수지는 쉽게 돈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지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자기가 받은 용돈이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렇다고 아직 돈 관리를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전부 맡기기에도 걱정이 됐다.


그때, 실랑이를 지켜보던 남편이 솔깃한 제안을 했다.


"수지야, 그럼 수지가 들고 있는 돈을 천 원짜리 네 장으로 바꾸는 건 어때?"


나는 남편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살짝 놀랐다.
수지도 그 말에 흔들리는 눈치였다.


용돈을 그냥 달라는 게 아니라, 거래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아빠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수지에게, 내가 한술 더 떴다.


"수지야, 천 원짜리면 수지가 좋아하는 뽑기도 할 수 있어. 오만 원짜리는 뽑기 못 해. 그러니까 천 원으로 바꾸는 게 더 좋을 거야."


결정타였다.

수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만 원을 천 원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어딘가 살짝 속이는 것 같기도 하고, 빼앗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그래도 수지의 동의하에 이뤄진, 나름 공정한 거래였다.


나는 수지에게 천 원짜리 네 장을 주었고, 수지는 나에게 오만 원짜리 네 장을 건넸다. 이렇게 우리의 거래는 무사히 끝났다.


수지는 천 원짜리 네 장을 자기 지갑에 고이고이 넣었다.
구겨지지 않게 조심히 넣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아플 지경이었다.


나는 수지에게 말했다.

"수지야, 이걸로 나중에 뽑기 하자."


수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유치원 갈 준비를 하던 중 수지가 말했다.


"엄마, 나중에 유치원 마치고 뽑기 하러 가자!"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돈을 챙기라고 했다. 그러자 수지는 책상 위에 두었던 지갑을 열고,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내가 "뽑기 2천 원 아니야?"라고 묻자, 수지는 또박또박 말했다.


"엄마, 뽑기는 천 원이야."


아차. 수지가 종종 가는 뽑기 기계는 천 원으로도 할 수 있는 거였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수지는 천 원짜리 네 장 중 한 장만 꺼내며 말했다.


"엄마, 이거 나중에 챙겨 와."


어쩜 이렇게 야무질까.


나는 수지가 지갑을 통째로 챙길 거라 생각했는데, 딱 필요한 만큼만 꺼내는 모습을 보며 정말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수지, 벌써 경제관념이 있네.'


이렇게 필요한 곳에만 알뜰하게 쓴다면 용돈을 조금씩 줘도 스스로 잘 관리하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한 번에 한 번만 뽑기를 하는 수지.
그리고 그 한 번의 돈만 챙기는 수지.


우리는 나중에 뽑기를 하기로 약속하고, 나는 출근했고 수지는 등원했다.


수지가 받은 용돈으로 함께 뽑기 하러 갈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설렌다. 천 원으로 하는 뽑기는 수지에게 가장 충만한 기쁨이 된다.


아직 돈의 가치를 잘 몰라 오만 원을 천 원으로 바꾸고도, 자기가 좋아하는 뽑기를 할 수 있다며 기뻐하는 이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수지가 돈의 가치를 온전히 알게 되는 날이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이런 순수한 모습은 지금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더 소중하고,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다.


오늘은 괜히 퇴근 시간이 더 기다려진다. 천 원짜리 뽑기를 하고 환하게 웃을 수지를 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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