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아픔을 이긴 하루
어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두통이 있었고 설사까지 겹쳐, 여러모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몸이 좋지 않은 상태로 회사에서 하루를 버티고, 아이를 하원시켜 집에 오니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일단 수지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나는 쉬어야 할 것 같아 “엄마 머리 아파서 조금 누워 있을게” 하고 말하니 수지는 알겠다고 했다.
약을 먹고, 머리 지압과 손 지압을 하며 누워 있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은 있었지만 통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파서 끙끙대며 누워 있는데, 거실에 있던 수지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말했다.
“엄마 머리 아프니까 젖은 수건 머리에 올려줄게.”
아픈 엄마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자기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엄마 이마 위에 젖은 수건을 올려주는 게 떠오른 것 같다.
나는 열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수지는 자기 손수건을 꺼내 부엌 식탁 의자를 싱크대 앞으로 옮겨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수건에 물을 적셨다.
그리고 내 이마에 아주 차가운 수건을 올려주었다.
물기를 제대로 짜지 않아 축축했지만, 그 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름 통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수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수지는 “엄마 좀 더 쉬어” 라며 거실로 나갔다.
수지가 챙겨준 덕분인지 상태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후, 수지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다가와 침대 옆에 무언가를 놓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나갔다.
수지가 나간 뒤 무엇을 두고 갔나 보니, 작은 그릇에 껍질을 까놓은 귤이 담겨 있었다. 엄마 먹으라고, 수지가 귤을 까서 놓고 간 것이다.
수지는 평소 귤껍질 까는 걸 어려워해 늘 엄마 아빠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런데 그 귤은, 자기가 직접 까놓은 귤이었다. 작은 손으로 열심히 껍질을 깠을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 귤을 바로 먹지 못하고 한참 바라보았다.
수지의 마음을 더 깊이 느끼며 다시 누웠다.
머리는 여전히 아팠고 몸엔 힘이 없었지만, 두통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일어나겠다고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수지 저녁을 챙겨줘야 해서 몇 시에 일어나겠다고 말해두었는데, 그 시간이 되자 수지가 와서 말했다.
“엄마, 긴 바늘이 10에 갔어.”
수지의 말에 눈을 떴다.
그리고 침대 옆에 있던 귤을 집어 들며, “이거 수지가 엄마 먹으라고 가져다준 거야?” 하고 묻자 수지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지는 또 물었다.
“엄마 이제 안 아파? 괜찮아?”
나는 수지가 엄마를 챙겨줘서 많이 나았다고 말했다.
정말 수지 덕분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자, 수지가 작은 손을 내밀었다. 나를 부축해 주려는 손이었다. 그 손길에 마음이 찡해졌다.
수지의 손을 잡고 거실로 나가는데, 그 작은 손이 나에게는 큰 힘처럼 느껴졌다. 거실에 나오자 수지가 말했다.
“엄마, 이것 봐봐.”
그리고 잘 개어놓은 수건을 보여주었다.
빨래하고 건조기를 돌린 수건을 바구니에 담아 거실 바닥에 두었는데, 내가 쉬는 사이 수지가 그 수건을 모두 개어놓은 것이다. 얼마나 야무지게 개어두었는지, 놀라움과 감동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대단하다고, 정말 잘했다고, 고맙다고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지는 세정제가 든 분무기를 칙칙 뿌리며 집 청소를 했고, 자기 물병과 장난감도 정리해 두었다. 거실은 아주 말끔해져 있었다.
아픈 엄마를 도와주려고,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집안일을 꼼꼼하게 해 놓은 것이다. 내가 쉬는 동안, 수지는 거실을 이리저리 바쁘게 오갔던 것 같다. 덜커덩, 쿵쿵 나던 소리들이 다 그 흔적이었나 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고, 물건을 정리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고맙고 감동이었다.
나는 수지가 이렇게 챙겨준 덕분에 엄마가 다 나았다며, 정말 고맙다고 말하며 수지를 꼭 안아주었다. 수지는 그저 해맑게 웃었다.
이 날은 몸이 안 좋아 정말 힘든 하루였지만, 아플 때 혼자가 아니라 나를 정성으로 챙겨주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 비록 작은 아이일지라도,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큰 수지였다.
그 마음 덕분에 내 몸도 더 빨리 회복된 것 같다.
나는 힘을 내어 수지의 저녁을 준비했다. 그동안 수지는 책상에 앉아 색종이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와서 보여준 것은 편지 봉투와 그 안에 담긴 색종이 하트, 하트 팔찌, 그리고 ‘엄마 사랑해’라고 적힌 글이었다.
하나하나에 수지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마음에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다.
아픈 엄마에게 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수지.
이마에 수건을 올려주고, 귤을 까주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는 것으로도 모자라 편지와 색종이까지 접어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렇게 정성으로 엄마를 챙겨준 수지 덕분에 나는 큰 힘을 얻었고, 빠르게 회복했다. 마음에 힘이 나니 몸에도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지고, 때로는 마음에 힘이 나면 몸도 다시 일어선다.
아팠던 이 날, 나는 수지에게서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날 받은 사랑의 힘은 지금도 내 마음에 깊게 남아 있다.
아픔의 크기보다, 내가 받은 사랑의 크기가 더 컸다.
사랑이 아픔을 이겼다.
조건 없는 사랑 부모만 아이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또한 부모에게 한없이 주고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낀 날이다. 이 날 수지가 내게 건넨 마음은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