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어 환기 시키는 시간
나에게 오랜만에 평일 하루 휴가가 생겼다. 이 날 소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로 했다. 카페 가서 글 쓰고, 책 읽고, 새로운 곳에 한번 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어딜 가서 뭘 한다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매 순간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계획은 잠시 접어두었다.
원래라면 출근해서 사무실에 있을 9시에 스타벅스로 갔다. 평일 출근시간에 회사가 아닌 카페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글을 쓰면 새로운 공간에서 얻는 영감도 있고, 카페의 음악이나 사람들의 소리로 약간의 소음이 있지만 글에 집중하다보면, 처음엔 뚜렷하게 들리던 주변 소리도 어느새 희미하게 들린다. 그만큼 글에 집중하게 된다.
이런 몰입감을 느낄 때 왠지 모를 짜릿함을 느낀다. 내가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했을 때 오는 뿌듯함과 행복감이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유일하게 이런 몰입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 날도 카페에서 내가 저장해 놓은 글 하나를 수정하고 발행했다. 글 발행을 누르는 순간엔 늘 기분이 좋다. 내 마음에 담긴 나의 이야기들을 밖으로 꺼낼 때 설렘과 동시에 행복을 느낀다. 어른이 되고 설렘을 느낄 일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글을 쓰고 발행할 때마다 매번 설렘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배가 고팠다. 점심은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서 검색했는데, 마침 근처에 베이글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다. 한 번도 안 가본 곳이고, 강 뷰가 보이는 곳이어서 여기로 정했다.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쾌감이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설렘을 안고 간 베이글 가게는 입구부터 귀여워서 보자마자 더 기분이 좋아졌다.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손님들이 오기 전까진 내가 이곳을 전세 낸 거처럼 혼자 유일한 손님이 된 즐거움을 잠시 맛보았다.
창밖을 보며 샌드위치와 자몽주스를 맛있게 먹었다. 처음 와본 곳에서, 나 혼자, 먹고 싶은 샌드위치를 먹는 순간이 행복했다.
새로운 곳에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전환과 생각전환이 되고, 익숙함에 머물러 있던 마음이 새로움을 만나 생동감 있고, 활기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이 좋았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와서 평소 잘 안 가던 낯선 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 날 데려가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목적지는 정해두지 않고 일단 버스를 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어디서 내릴지 생각했다.
내가 정한 곳은 학창 시절 때 자주 왔던, 그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곳으로 정했다. 예전에 자주 가서 익숙한 것 같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해서 새롭기도 한 동네였다. 아예 처음 오는 곳은 아니지만 추억이 많은 곳에 오랜만에 오니, 정겹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온 동네의 길을 걸으며 주변을 구경하니, 변한 것들도 보이고, 그대로인 것도 보인다. “이것도 변했네, 예전엔 이거였는데 지금은 다른 거네. 여기는 이렇게 됐구나, 이 가게는 여전히 있네 “ 하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을 음미했다.
내 마음 한편 깊숙이 있던 추억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전의 좋은 추억은 지금의 나에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즐겁게 구경하며 걷다가, 한 카페 앞에서 멈췄다. 예전에 동생과 이 카페를 와본 적이 있는데, 다른 카페와는 확연히 다른 인테리어의 카페라 굉장히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이 카페 앞을 지나면서 그때의 기억이 났고, 이 카페는 오픈시간이 매일 달라서 운이 좋아야 잘 맞춰 들어갈 수 있는데, 마침 내가 간 그 시간에 오픈 돼 있었다. 그래서 설렘을 가지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카페는 내부가 넓지 않고 좁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인원수에 맞춰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1인용에서 6인용까지의 자리로 5개 정도 테이블이 나눠져 있었다.
카페 사장님이 나에게 몇 명이냐고 물으셔서 나 혼자라고 하니 1인용 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그리고 1인용 자리를 보는 순간 ”우와! 너무 좋다! “ 하는 마음의 외침이 저절로 나왔다. 정말 온전히 나 혼자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나왔다.
카페에서 조용히 책 읽고, 글 쓰고 싶다고 생각한 나에게 너무나 잘 맞는 공간이었다. 내가 딱 원하던 공간! 정말 마음에 들었다.
오늘 여기로 올 거라고 계획했던 건 아닌데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내가 지금 여기에 와 있었다. 오늘 하루 무계획으로 무작정 간 여행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만난 느낌이다. 너무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이 카페 커피도 정말 맛있다!),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이 순간 행복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문득 인생도 이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것을 계획해도
그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고,
거창하고 멋있는 계획을 짜지 않아도,
좋은 것을 만나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하며 한 발짝 한 발짝 길을 걷다 보면
내가 가는 길에서 좋은 것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굳이 많은 것을 계획하며 살고 싶진 않다. 그저 매 순간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 바라는 꿈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지만, 이대로 꼭 돼야만 한다는 계획은 마음에 심고 싶진 않다.
오늘 하루처럼, 계획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만나게 된 좋은 것들이 나에게 선물처럼 느껴진다. 내가 오늘 철저하게 계획을 짜고 그대로 갔다면 설렘과 새로움이 주는 그 즐거운 감각을 얻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이렇게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가는 일상의 여행을 반드시 해야겠다. 좋은 추억이 있는 곳에 가보기도 하고, 설렘이 있는 곳으로 가보기도 하고, 한 번도 가지 않은 곳도 가보며 확실한 기분전환을 한 번씩 해야겠다.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내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고, 설렘과 새로움으로 가득할 수 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내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늘 나의 하루 휴가가 새로움으로 충전하고, 행복으로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나에게 선물 같은 하루였다. 이 날의 좋은 기억과 경험이 나에게 새로운 힘을 준다. 또 다음 언젠가 있을 휴가를 기다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상을 여행하듯 지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