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이의 재밌는 유치원 생활
어젯밤에 자려고 침대에 아이와 누웠는데, 수지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박수지’라고 하면 친구들이 이렇게 손들고 ‘네!’라고 해.”
(선생님이 출석 부르듯 반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 이름이 불린 아이들이 네라고 대답 하는 걸 말하는 것 같음)
“그러면 나는 부끄러워서 작게 ‘네~’라고 해. 그런데 라희는 큰 소리로 ‘네!’라고 해.”
이렇게 말하며 친구 흉내도 내는 수지가 너무 귀여워서 내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 수지가 작게 ‘네~’ 한다는 그 말이 한번 더 듣고 싶어서 내가 다시 물었다.
“선생님이 박수지~라고 하면 수지는 어떻게 한다고?”
"나는 부끄러워서 작게 네~라고 해."
"까르르르르르르르르 깔깔"
난 빵 터져서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내 웃음에 수지도 웃음이 터져서 같이 웃었다.
"그럼 라희말고 다른 친구들도 크게 네~! 라고해?"
"아니 다른 친구들도 작게 네~해"
"아~ 라희처럼 크게 네! 하는 친구도 있고 작게 네! 하는 친구도 있구나."
수지는 자기를 부르면 부끄러워서 크게 대답을 못하겠다고 했다. 수지는 밝고 활발한 아이지만, 수줍음도 많이 타고, 특히 낯선 사람 앞에서는 더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처음에 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데, 친해지고 나면 한없이 해맑은 매력을 마구 뿜어댄다.
수지가 이 이야기를 해주는데, 5살 아이가 부끄러움의 의미도 알고, 부끄러워서 작게 대답한다고 말을 하는 게 너무 귀여웠다. 수줍음 타는 귀염둥이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한참 많이 웃었다.
그리고 수지는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갔다.
"엄마, 곰돌이버스(유치원 버스)에서 선생님이 '이제 라희 내릴 거예요~'라고 하면 라희는 '네!' 하고 크게 말해.”
“그래? 그럼 수지는 선생님이 수지 이제 내릴 거예요 하면 작게 ‘네~’라고 해?”
“아니, 나는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안 해”
난 또 빵 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한참 웃고 난 후에,
“수지도 ‘네’라고 대답해 주면 선생님이 좋아할 텐데~”
“난 부끄러워. 엄마, 라희는 크게 네!라고 하고, 은수는 작게 네~라고 하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해”
정말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수지가 친구들이 대답하는 흉내를 내며 크게 대답한다는 라희를 흉내 낼 때는 크게 네!라고 하고, 작게 대답하는 은수 얘기를 할 때는 작은 소리로 네~라고 하며 이야기해 주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커서 자기가 겪고 본 일에 대해서 재밌게 이야기도 해주는지, 행복한 뭉클함이 들었다. 내가 아이와 대화하며 웃은 이 시간이 이 날 하루 중 가장 크게 웃은 시간이었다.
늘 나를 웃게 하는 아이는
내 삶에 선물이자 천사 같다.
모든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고, 웃게 한다.
웃으며 행복해지고, 행복해서 웃는다.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은 아이가 말해주지 않으면 전혀 알 수가 없다. 수지가 유치원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오늘 뭘 했는지 매일 궁금하긴 한데 꼬치꼬치 묻지 않아도 수지가 생각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해 준다.
유치원을 처음 가던 주에는 오늘 뭐 했냐고 많이 물어보기도 했는데 막상 물어볼 땐 수지가 “음 모르겠어”라고 하거나,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밌었냐는 물음에는 항상 재밌다고 해서 아, 재밌게 잘 지내고 있구나 생각하며 그 대답에 그저 만족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오늘 뭐 했냐는 질문이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해서 5살 수지가 대답하기엔 어려웠을 것 같다.
‘오늘 뭐 했어?’가 아니라, ‘오늘 손 씻을 땐 어떻게 했어?’ ‘간식은 뭐 먹었어?’ ‘양말은 벗고 놀았어?’라는 등 구체적인 질문에는 수지가 대답을 다 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일일이 묻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가 오늘 했던 일이 생각날 때, 말하고 싶을 때 말해주는 데, 아이가 스스로 해주는 말을 듣는 게 더 재밌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일일이 뭐 했냐고 묻지 않는다.
사실 유치원 버스에서 내릴 때 밝은 아이의 표정만 봐도 오늘 충분히 즐거웠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더 이상 다른 걸 묻지 않는다.
어제 수지랑 자기 전에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이 시간이 정말 행복했다. 내가 모르는 수지의 유치원 일상 이야기가 너무 재밌고 흥미롭다. 그리고 자기가 보고 겪은걸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는 수지의 몸짓, 표정, 말 하나하나가 다 너무 사랑스럽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유치원 이야기를 듣는 게 재밌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보고 배운 걸 집에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런 걸 보며 '아, 우리 수지 유치원 생활 잘하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잘 지내고 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를 보며 흐뭇하다.
새로운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수지에게도 새로운 경험들이 쌓여간다. 아이에게 좋은 기억이 많이 남는 유치원 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앞으로 쌓여갈 이야기들을 아이와 나눌 시간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