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도 펜발이 있다
나는 이제 손글씨연습을 위해 샀던 책으로 연습하지 않는다. 이전 글에도 썼는데, 어떤 글자체를 목표로 해서 똑같이 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 내 글씨체 모양이 나온다. 글씨체도 지울 수 없는 나만의 색깔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나만의 글씨체가 있다. 그래서 내 글씨체가 아닌 다른 글씨체를 따라 쓰려는 노력보다, 원래의 내 글씨체를 더 반듯하고 이쁘게 써보기로 노력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본 내 글씨체를 발전시켜 나만의 서체를 만들기로 하고, 이전에 산 손글씨 책은 서랍 한편에 넣어두었다.
난 평소에 책 내용이나 좋은 문장 필사하는 걸 즐겨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필사를 하면서 손글씨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간 몇 주동안 손글씨 책으로 연습한 덕분에 글씨를 신경 써서 반듯하게 쓰려는 노력이 손에 베였다. 잠깐 메모하는 글을 쓸 때도 신경 써서 적게 된다.
뭐든 많이 하면 할수록 좀 더 나아진다. 글씨도 마찬가지다. 계속 의식하며 연습하다 보니, 점점 나 스스로 만족하는 글씨체로 변하는 게 보인다.
글씨체 연습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필사도 하니, 글씨 연습 하는 게 더 즐겁다. 신경 써서 쓴 글씨로 노트 한 페이지가 채워진 걸 보면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글씨연습을 하며 또 하나 깨닫게 된 게 있다. 사람에게 화장발, 머리발, 옷발이 있듯이 글씨도 펜발이 있다.
처음엔 펜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손글씨 전문 유튜버도 말했다. 글씨도 펜발이 있다고.
내가 평소에 늘 쓰던 펜은 자바 e-office ball 펜 0.7이었다. 사무실에서 쓰던 펜이었는데 이 펜을 오래 쓰다 보니 그냥 익숙해서 손글씨 쓰는 건 이 펜으로만 썼다. 처음 글씨 연습 시작 했을 때도 이 펜으로만 썼다. 그런데 아무리 신경 써서 써도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항상 있었다.
글씨는 많이 이뻐진 것 같은데,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고 내가 원하는 깔끔함이 부족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문득 글씨도 쓰는 펜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생각나서 펜을 바꿔보기로 했다.
바로 펜시점에 가서 펜을 몇 가지 사봤다. 그리고 새로 산 펜으로 글씨를 썼는데, 쓰자마자 느꼈다.
글씨는 펜발 맞구나!
펜을 바꾼 것만으로도 글씨체가 훨씬 좋아졌다. 이때 내가 쓴 펜은 제트스트림 0.5였다. 이 펜을 한번 쓰고 난 이후로 글씨는 이 펜으로만 쓰고 있다. 다른 종류 펜도 샀는데, 아직은 이 펜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펜에 익숙해지려는 노력 중이다. 이 펜에 길들여지고 나면 또 다른 펜으로 써보려고 한다.
제트스트림 펜은 내가 기존에 쓰던 자바 오피스볼펜이랑은 질감이 완전히 달랐다. 종이에 써지는 글씨도 확실히 달랐다. 제트스트림이 훨씬 더 선명하고 글씨를 바로잡아주는 느낌이랄까. 뭔가 더 또렷하고 또박한 느낌을 더 살려주는 펜이었다.
글씨에 관심이 없을 때는 ‘펜이 다 거기서 거기지, 다 똑같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씨에 관심을 가지고, 글씨체 이쁘게 쓰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쓰는 펜에 따라 글씨도 다르게 써지고, 펜의 종류도 무수히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작은 펜 하나도 각자의 특성과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글씨 하나로 시작해서 이렇게 새로운 펜의 세상에도 입문하게 되었다.
요즘은 한참 제트스트림 펜을 쓰고 있는데, 또 나중엔 다른 펜을 써보고 후기도 남겨보고 싶다. 펜을 바꾸고 글씨가 더 나아지는 걸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무언가 목표를 정하고 가는데 아무리 해도 속도가 안 나고 결과가 잘 안 나온다면, 노력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잘 들여다보고 방법을 살짝 바꿔보기만 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력을 계속하는데
무언가 잘 진행이 안된다면,
그 속에 어떤 작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만 해도
내가 원하는 목표에 어느 정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펜 하나 바꿨을 뿐인데 글씨체가 달라졌고, 만족감이 더 높아졌다.
모든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된 일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의 변화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관심을 가져보자. 내가 원하는 답은 그 작은 것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