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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4시간 동안 산책하며 느낀 행복

천천히, 오래 음미한 사랑스러운 풍경들

by 행복수집가

토요일 주말엔 아이와 쇼핑몰 안에 있는 키즈카페에서 놀았다. 다 놀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수지가 아동옷 매장을 기웃거리며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매장에 들어갔다. 수지는 신난 표정으로 옷도 하나하나 다 구경하고, 신발도 만져보고 마음에 드는 건 꺼내보기도 하며 열심히 구경했다. 수지는 옷과 신발을 실컷 구경했다. 특별히 뭘 사진 않았지만, 이쁜 옷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만족감이 있다. 수지도 그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제 자기 취향이 꽤 확고해진 수지는 옷이랑 신발을 구경하며 자기 마음에 드는 걸 고르며 ‘이거 이쁘다’ 고 말했다. 마음에 드는 멜방청치마는 자기 몸에 대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신발을 꺼내서 신어보려고 했다.


다섯 살 꼬마아가씨가 얼마나 야무지게 쇼핑을 하던지, 꼼꼼하게 살피는 아이를 보며 우리 수지 참 많이 컸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마음에 드는걸 실컷 구경만 하고 사달라고 떼쓰진 않았다. 눈으로 하는 즐거운 쇼핑을 하고 우리는 매장 밖을 기분 좋게 나왔다.




쇼핑몰에서 집까지는 20분 정도는 걸어야 해서, 햇빛을 가려줄 우산 하나를 샀다.


이 날 날씨는 화창했고 여름 햇살 같았다. 뜨거운 햇빛을 막아줄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수지와 걷기 시작했다. 수지는 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것을 구경하고 관찰하느라 자주 멈췄다.


강 위의 다리를 건널 때는 강을 한참 쳐다봤다. 그렇게 천천히 다리를 건너와서는 벤치에 잠시 앉아서 쉬었는데, 그 잠깐동안에도 벤치 밑에 개미가 있다며 쭈그리고 앉아 개미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 잠시 걷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서 나뭇잎으로 놀며 걸었다. 걷다 보니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만났다. 수지는 축구하는 오빠들을 본다며 멈춰서 구경을 했다.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걸 겨우 말렸다.


또 조금 걷다 보니 공원에 졸졸졸 흐르고 있는 개울물을 만났다. 수지가 개울물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근처에서 바로 나뭇가지를 하나 줍더니 개울물 낚시를 할 거라며 돌 위에 앉았다. 그리고 수지는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나뭇가지를 물에 담그며 한껏 집중해서 낚시를 하는 수지는 영락없는 꼬마 낚시꾼이었다.


나는 낚시하는 수지 옆에 앉아서 아이 얼굴 위에 우산을 받쳐 그늘을 만들어주고 낚시하는 수지를 구경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낚시를 하는 수지가 마냥 귀여웠다. 낚시하는 아이 뒤로 눈부신 햇살이 개울물에 비춰서, 반사되는 빛 때문에 아이 주변이 더 환하고 밝았다. 이 풍경이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아이의 낚시놀이가 끝날 때까지 이 아름다운 풍경을 온전히 음미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다가 물만 보면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고 노는 수지에게 물어봤다.


“수지는 물에 나뭇가지 던지는 게 왜 좋아?”


“음. 내가 너무 좋아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수지는 이게 너무 좋단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보다 딱히 이유가 없는 게 많다. 내가 무언가를 했는데 내 마음이 좋으면 그냥 이걸 하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를 할 때 기분이 좋아서 그냥 하는 거다. 그냥 좋아서.


그냥 좋아서 물에 나뭇가지를 던지고 노는 수지는 이 놀이에 온 집중을 다 한다. 그 순간을 충만하게 즐기고 느낀다.


하루하루 매 순간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는 아이가 참 행복해 보인다.
그리고 아이의 행복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행복한 아이 옆에 있으니 나도 행복해진다.



수지는 낚시 놀이를 충분히 만족할 만큼 하고 일어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가 공원에 있던 회색 조명등을 보고는 ‘고래’라고 했다. 수지가 고래라고 해서 보니 정말 고래처럼 생겼다.


수지는 “어 고래다! 내가 눈을 만들어줘야지” 하고 옆에 있던 풀잎을 떼서 눈을 만들어주었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아이는 그 무엇도 그냥 지나치는 게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그 대상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부각한다. 이렇게 해서 눈에 띄지 않던 조명에 ‘고래’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제 이 산책길을 지날 때마다 수지가 이름 붙여준 ‘고래조명’을 보면 웃음이 날 것 같다.


아이는 의미부여의 천재인 것 같다. 아이는 주변의 모든 것에 소중하고 귀여운 의미를 붙여준다. 참 사랑스럽다.


아이가 의미를 불어넣어 주면
모든 사물이 더 사랑스러워진다.
이건 아이가 가진 마법 같은 힘이다.
아이에겐 별거 아닌 게 없다.
모든 것이 특별하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 옆에 있으면, 나도 이 세상 모든 게 좀 더 재밌게 느껴진다. 흥미롭고, 다채롭고, 사랑스럽다.




쇼핑몰에서 집까지 걸어서 20분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인데, 아이와 같이 걷다 보니 집까지 오는데 4시간이 걸렸다. 사소한 모든 것이 다 재밌고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는 1시간이 1분 같다.


이 날 수지와 산책하며 몸은 조금 힘들기도 하고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프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이 참 행복했다. 내 아이와 이렇게 주변의 모든 걸 즐기고 보는 순간이 참 좋다.


바쁘게 걸어 다닐 땐,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도 빠르게 지나쳤다. 그런데 아이와 산책하다 보니 천천히 걷고, 자주 멈추면서 평소에 빠르게 지나친 아름다운 풍경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음미할 수 있었다. 천천히 음미할 때 그 대상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이 더 깊게 와닿는다.


모든 대상을 특별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걸었던 아이와의 산책이 정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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