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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Jul 04. 2024

아이가 쓴 편지

아이가 엄마에게 하고싶은 말

내 아이는 매일 자기 전에 나와 놀이를 하고 자러 간다. 그날그날 놀이 주제는 다르다. 놀이의 주제는 늘 아이가 정하고 나는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에 참여한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공부한 교재와 사인펜을 가지고 오더니 여기에 공부하자며 교재를 펼쳤다. 그리고 나에게도 쓰라며 내 손에 사인펜을 쥐어주었다.


수지는 유치원에서 배운 한글의 자음, 모음을 자기만의 형상으로 재창조한 그림 같은 문자를 썼고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글이나 적었다. 이것저것 적다 보니 ‘사랑하는 수지에게’라고 시작하는 짧은 편지글을 적게 되었다.


다 적고 나서 수지에게 말했다.


“수지야 이거 봐 바. 엄마가 수지한테 편지 썼어. 읽어줄까?”


“편지? 응.”


수지는 편지가 뭔지 모르지만 내가 편지 읽어준다고 하니 뭔지 궁금해하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내가 쓴 짧은 편지를 읽어주었다. 내용은 물론 수지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내 편지내용을 들은 수지는 배시시 웃더니 자기도 편지를 쓸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쓰는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림 같은 글자를 꾹꾹 눌러 적는 수지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진지하게 쓰고 있는 수지 옆에서 소리 내서 웃을 순 없어서 조용한 웃음을 지으며 수지의 이쁜 모습을 눈에 가득 담았다.


잠시 후 편지를 다 썼다며 나에게 읽어주었다. 수지는 자기가 쓴 글자를 자기는 알아본다는 듯이 시선을 글자에 두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편지 낭독을 하기 시작했다.


입을 열기 시작하자 쉬지 않고 거의 50 문장은 말한 것 같다. 다 기억이 나진 않는데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 나에게 선물을 줘서 고마워.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괴물이랑 악당을 물리쳐줬어. 오늘 숨바꼭질도 재밌었지. 놀이터에서 친구랑 놀았어. 친구랑 놀다가 화가 났지만 그래도 괜찮아.“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부분이 많았다. 수지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 상상한 이야기 그리고 자기의 감정이나 느낀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수지의 말을 듣고 있으니 정말 편지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쫑알쫑알 쉬지 않고 얘기하는데 그 모습이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종이에 적은 글자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하는 수지였다. 아직 글자를 잘 못 적을 뿐이지 마음에선 할 말이 넘쳐나는 아이다. 수지의 마음에 담긴 말을 아직 글자가 못 따라간다. 종이에 다 적지 못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는 수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나는 종이에 글자 4줄 적고 딱 그 4줄만큼의 내용만 수지에게 말해줬는데 수지는 자기만 알아보는 글자로 한 줄 정도 적고 50줄을 줄줄 말했다. 글에 다 담지 못하는 말이 마음에 가득 차 있는 아이다.


이 날 저녁 자기 전에 우리는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이렇게 마음을 주고받았다. 이 후로도 수지는 저녁마다 종종 노트를 꺼내서 편지를 써준다며 무언가를 적는다. 그리고 이쁜 말을 전해준다.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를 사랑해’ 같은.


나는 참 아이에게 넘치게 사랑받는 행복한 엄마다. 


하루 끝에 수지의 귀엽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가 내 하루에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시작해서 함께 마무리하는 하루가 참 소중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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