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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Jul 13. 2024

아직 기저귀를 떼는 중인 48개월 아이

48개월만에 변기에 앉아 처음 쉬했다

내 아이는 지금 만 4살, 48개월인데 아직 완벽하게 기저귀를 떼지 못했다.


평소에 팬티를 입고 생활하긴 하지만 용변을 볼 때는 변기가 아닌 기저귀에 한다.


올해 유치원 가기 전에 기저귀를 뗐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는데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고 반에서 유일하게 기저귀를 챙겨가는 단 한 명의 아이가 되었다. 다른 아이들이 변기에  쉬 하는 걸 봐도 마음의 동요없이 꿋꿋하게 기저귀에 쉬를 하고, ‘변기에 쉬 해볼까?’라고 물으면 항상 ‘아니’라고 대답하며 야무지게 기저귀를 챙기던 아이에게 이번 7월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얼마 전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님, 수지가 요즘 집에서 변기에 쉬 한 적이 있을까요?”


“아니요 아직 없어요~”


“아 그래요? 어머님 오늘 수지가 유치원에서 변기에 혼자 쉬 했어요!”


“네?! 정말요?!!!!”


“네 어머니~ 오늘 기저귀가 마침 다 떨어져서 수지에게 집에 가기 전에 쉬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은데 기저귀가 없어~ 수지야 혹시 변기에 쉬 하고 올 수 있겠어?라고 했는데 수지가 알겠다고 하더니 변기에 앉아서 쉬를 했어요! 이 기쁜 소식을 어머님께 빨리 전해드리고 싶어 연락드렸어요~”


정말 놀랐고 감격스러웠다. 사실 너무 기다렸던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듣게 될 언젠가를 기다리는 마음을 항상 마음 한편에 고이 넣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때에 이런 소식을 들으니 정말 감격스럽고 기뻤다.


그리고 하원하고 돌아온 수지에게 살짝 물어봤는데 수지가 변기에 혼자 앉았다고 말했다.


“엄마 내가 혼자 앉아서 변기에 쉬 했어.
쉬가 조금 나왔어.”


기저귀를 안 하고 변기에 스스로 앉은 게 너무 대견해서 정말 칭찬을 많이 해줬다.




예전에 기저귀 떼는 것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시기가 있었다. 유치원을 갈 때까지도 기저귀를 못 뗐을 땐 정말 걱정도 되고 여러 가지가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동안 기저귀 떼기에 좋다는 방법은 다 써봤고, 강압적으로도 한번 해봤다가 역효과만 났다. 기저귀 떼는 건 억지로 한다고 절대 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아이들만의 때가 있다고, 나중엔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가 알아서 뗀다는 얘기를 들어도 사실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왜냐면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내 아이는 여전히 기저귀를 못 떼고 있으니, 내 눈앞에 아직 기저귀를 못 뗀 아이가 더 커 보였다.


그런데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엔 이 집착과 조바심이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나와 아이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난 후엔 이 마음을 내려놓았다. 조바심과 불안은 아이에게 전달되고 엄마가 초조해하는 걸 느끼는 아이는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기저귀 떼는 게 아이도 더 부담이 되고 힘들다.


한동안 아이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내려놓고 내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언제까지 기저귀를 떼야한다고 정해놓은 기준을 버리고, 그냥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떼면 되지 하고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평생 기저귀 할 건 아닐 테니까 지금 당장 눈앞을 보지 말고 좀 더 멀리 내다보기로 했다. 초등학생이 된 수지가 기저귀에 쉬를 하고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수지에게 기저귀에 대한 얘기도 안 하고 그냥 편하게 놔뒀다.


아이가 자기 마음이 편해지면 하겠지 싶어서 그냥 아이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가끔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이 불쑥 올라올 때마다 곧바로 ‘그래 지금처럼 가만히 있는 게 맞아. 잘하고 있는 거야’ 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동안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변기로 유인하기 위한 행동을 했을 때 그게 오히려 독이 됐던 것 같다. 그걸 느끼고 나서는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정하고 자기 마음이 편할 때에 할 수 있도록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한동안 변기 얘기는 안 하고 그냥 수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이런 날이 왔다.


아이가 스스로 변기에 쉬를 하는 날이.




진짜 믿고 기다리는 게 육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엄마 마음이 급해서 아이를 닦달하면 역효과만 난다. 아이는 다 자기만의 때가 있다. 진짜다. 엄마 아빠가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를 믿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아이는 그 안정적인 마음 안에서 편안해한다. 그리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기 마음이 정해졌을 때 스스로 변화를 일으킨다.   


이전에는 내가 아이의 속도를 기다리지 못했다. 스스로 나름 노력 중인 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내가 원하는 속도에 아이를 맞추고 싶어 했다. 그때는 수지가 너무 느린 것 같아서 조바심이 생기고 불안했다.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땐 자기 속도대로 가고 있는 내 아이의 속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진짜 집중해야 했던 것은 내 아이의 속도인데 나는 내 아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보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힘든 시기를 겪다 보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저귀를 못 뗀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이걸 문제로 바라보는 내 시선과 내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는 내가 문제였다. 이걸 알고 나서는 비교하는 마음과 기준을 내려놓고 아이가 가는 속도에 맞춰서 기다렸다.




유치원에서 수지가 쉬 했다는 연락을 받은 다음 날, 수지는 팔에 “변기에 쉬한 수지를 칭찬합니다”라고 적힌 칭찬 스티커를 붙이고 하원했다.


이 날도 수지가 혼자 변기에 앉아 쉬를 했다고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수지가 정말 대견하고 고마워서 많이 칭찬해주었다.


조심성 많고 겁도 많고 예민한 수지는 엄마아빠가 시켜서도 아니고, 선생님이 시켜서도 아니고 스스로 용기 내서 자기 마음이 준비가 됐을 때 했다.


아직 기저귀를 완전히 뗀 건 아니지만 이제 유치원에서는 기저귀를 하지 않고 변기에 스스로 쉬를 한다. 유치원에 있는 동안 하루에 3, 4번 쉬를 하면 그중에 2, 3번은 기저귀 없이 한다고 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변화인가.


‘집에서도 변기에 해볼까?’라고 물어보니 아직 집에서는 안 하고 싶다고 한다. 나중에 한다고 한다. 그 말에 나는 바로 알겠다고 했다. 그래, 수지 하고 싶을 때 하면 돼.


수지는 한다면 하는 아이니까. 본인이 스스로 마음을 정한 대로 실천하는 아이니까. 집에서도 변기에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제 서두르는 마음이 없다. 스스로 본인의 때를 알고 하는 아이를 믿는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도 한 단계 더 성장했고, 나도 같이 성장한 것 같다.


믿고 기다리는 것.


이것만이 내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저 아이를 믿고 기다리며 재촉하지 않으면, 내가 뭘 애써 바꾸려 하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다.


나는 아이가 성장해 가는 것을 보는 목격자로 있으면 된다. 내가 아이를 성장시키는 게 아니라, 성장해 가는 아이를 보는 것이다.


내가 바꾸고 싶어서 애쓸때는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고 스스로 변한다.


수지는 이제 막 변기에 쉬를 하기 시작했지만 완벽하게 기저귀를 떼기까지는 앞으로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좋다. 급하지 않다. 이만해도 참 잘하고 있다.


중요한 건 타인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인지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기특하고 대견하다.




그리고 아이가 기저귀를 아직 못 떼서 불안한 부모님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아주 개인적인 견해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전문가 아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속이 타고 답답하시겠지만 아이를 꼭 믿고 기다려주세요.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게 맞다고 자기에게 말해주며 계속 묵묵히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아이가 잘 자라는 이쁜 모습에만 집중하세요. 기저귀 못 뗀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많은 것을 놓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의 내 아이는 평생에 한 번뿐인 모습이거든요. 기저귀에 쉬한다고 혼내지 마시고 변기에 하라고 압박 주지도 마시고 그대로 놔두세요. 언제까지 기저귀 떼야한다는 기한도 내려놓으시고 그냥 기다려주세요. 그러면 진짜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변기에 쉬합니다. 이건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마음이 열리고 편해졌을 때 할 수 있어요. 그때는 분명히 옵니다. 제 아이도 정말 기저귀를 못 벗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변기에 쉬를 했어요.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을 버리고, 조급함을 내려놓고 매일같이 하던 ‘변기에 쉬 해볼까?’라는 말을 멈추고 나서 나타난 변화입니다. 지금 내 눈에 아이가 답답해 보여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스스로 노력하며 준비하고 있어요. 내 아이를 믿고 묵묵히 기다려 주세요. 기저귀 떼는 날은 반드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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