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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Aug 19. 2024

'사랑의 하츄핑' 영화를 보고 아이가 울었다

5살 아이 인생 첫 영화  

이번 주말에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화제인 ‘사랑의 하츄핑’ 영화를 아이와 같이 보러 갔다.


수지는 영화를 보는 게 5살 인생에서 처음이었고, 우리 세 식구가 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난생처음이었다. 처음이라 너무 설레고 기대가 됐다.


영화관을 처음 와본 수지는 신기해하며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그리고 수지가 먼저 팝콘도 먹자고 말하며 얼른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설레어하는 게 보였다.

영화 보러 가기 전 하츄핑 인형을 안고 신난 수지


영화관 안에 들어가서는 큰 스크린에 많은 의자를 보고 수지는 살짝 흥분했고, 좋아했다.


나도 수지랑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언제 아이가 이만큼 커서 같이 영화도 보러 오나 싶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여유롭게 팝콘을 먹으며 영화가 시작되기 전 나오는 광고도 재밌게 봤다.


그리고 드디어 핑크빛 배경에 이쁜 성이 나오면서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은 역시나 사랑스럽고 발랄함 그 자체였다.


영상이 너무 이쁘다는 생각을 하며 나도 시작부터 영화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수지도 잘 보고 있는지 흘깃흘깃 수지를 보며 계속 확인도 했다.  


다행히 수지도 꽤 집중해서 잘 보는 것 같았다. 집중한 수지의 표정을 보고서는 남편과 눈을 맞추며 ‘오길 잘했다’ 하는 사인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영화 스토리상 중간에 괴물도 나오고 화면이 어두워지고 천둥번개가 치는 장면들도 있었다. 그런 장면들에선 혹시나 수지가 무서워하지 않을까 싶어 또 수지를 쳐다봤는데 수지가 손을 눈 옆에 올리긴 했지만 크게 별 내색 하지 않아서 괜찮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어디 전시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갔을 때 장소가 어둡거나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면서 안 들어 가려하고, 눈을 가렸는데 이번 영화 볼 땐 그러진 않아서 괜찮은 줄 알았다.  


영화는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수지에게 보여주려고 한 영화지만 나도 영화에 빠져서 감동도 받고 감탄도 하면서 영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즐기고 있는데 영화 끝으로 갈수록 싸우는 장면들이 나오고 천둥번개가 치고 다리가 무너지고 성이 무너지는 등 그런 장면들이 많이 나왔다.


그때 수지에게 무섭냐고 물어봤다. 수지는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내 무릎에 앉혔다. 그렇게 수지를 안고 영화를 끝까지 다 봤다.




영화가 끝이 나고 불이 켜졌다. 난 이제 ‘영화 잘 봤다’ 하며 수지를 쳐다봤는데 수지 표정이 안 좋았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내가 수지에게 영화 재밌었냐고 물어보니 수지가 “무서웠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울먹이는 수지의 얼굴을 보고 놀라서 “수지야 무서웠어?”라고 하니 수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때 울음은 소리 내서 엉엉 우는 게 아니라 감정을 참고 참다가 서러움에 소리조차 크게 나지 않는 울음이었다.


수지의 우는 모습을 보고서야 ’ 아차, 내가 눈치를 못 챘구나. 내가 몰랐구나 ‘ 싶었다. 수지는 영화를 보면서 많이 무서웠는데 그걸 꾸역꾸역 참은 거다. 끝까지 참고 본 수지는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무서움을 참으며 힘들었던 감정이 폭발했다.


이 작은 아이가 공포감을 혼자 참고 삭혔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서럽게 우는 수지를 품에 안고 수지의 마음을 몰라준 게 너무 미안해서 ‘무서웠어? 미안해. 수지야 미안해. 우리 수지 무서웠구나, 미안해’ 하고 사과를 하며 계속 안아주었다.


내가 그렇게 안아주니 수지는 더 서러운 듯 울었다. 정말 요 근래 전혀 느끼지 못한 생소한 감정을 느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혼자 무서움을 참았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다.


진작 일찍 물어볼걸, 일찍 눈치를 채고 중간에 데리고 나왔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수지를 안고 있었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수지는 울음을 쉽게 그치지 못했다. 한참 안고 있다 보니 울음이 잦아들었고 수지는 울음을 그쳤다. 여전히 표정은 안 좋았다.

울음을 겨우 그친 수지 모습


주변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다 이 영화를 보러 가고 추천도 받고 아이들도 재밌게 봤다고 해서 우리 수지도 잘 볼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영화라도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귀엽고 이쁜 하츄핑도 나왔지만 영화에 나오는 괴물, 천둥번개, 저주에 걸린 티니핑이 수지에게 더 무서운 자극으로 다가온 것이다.




주말에 수지랑 나들이를 가면 수지는 항상 기분이 좋았고 늘 웃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하츄핑 영화를 보고 기분이 안 좋아진 수지는 맛있는 케이크가 있는 카페에 가도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계속 기분이 안 좋았다.


이 날 영화를 보며 느낀 공포의 여운이 꽤 오래갔다.


그런데 집에 오니 마침 전날 주문한 물감색칠놀이 세트가 와 있었고, 수지는 물감놀이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보자마자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더니 빨리 하고 싶다고 했다. 물감놀이에 집중한 수지는 정말 재밌어했다. 하츄핑 영화를 보며 겪은 무서움은 물감놀이를 하면서 잊힌 것 같았다.


이 후로 수지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평소처럼 활발하게 웃으며 놀았다. 잠시동안이었지만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을 없어졌을 때 마음이 참 안 좋았다. 아이에겐 작은 자극도 크게 와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어른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이에겐 큰 아픔일 수도, 때로는 큰 기쁨일 수도 있다.


이 경험으로 또 하나 새롭게 배운 것 같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육아에도 정답은 없다. 남들에게 좋은 답이 나에겐 맞지 않는 답일 수도 있고, 다른 아이들에겐 좋은 것이 내 아이에겐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남이 기준이 아닌 나를 기준으로 삼고 나답게 인생을 살 때 만족스러운 것처럼, 육아에서도 내 아이의 기질을 잘 살피고 아이 자신에게 맞게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내 아이는 어두운 영화관에서 1시간 반동안 영화를 보는 것보단 밝은 곳에서 뛰어놀고, 오감으로 체험하고, 만지고 그리는 이런 놀이가 더 좋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영화는 커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굳이 지금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아이와 영화를 보러 가진 않을 것이다. 무서움을 꾹 참으며 보기 싫은 것을 억지로 봐야 하는 짐을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다. 마음 편히 자유롭게 웃으며 놀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더 나가야겠다.


스크린을 보는 것보다 웃는 내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훨씬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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