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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Sep 30. 2024

아이와 버스타고 걸어다닌 날

아날로그의 가치

이번 주말에 남편은 출근하고 나랑 아이 둘만 있었다.

5살 수지가 집안에만 있는 건 너무 심심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다 분출하기엔 집의 그릇이(?) 작아서 주말이 되면 어디든 나가려고 한다.


나는 운전을 못하는 뚜벅이 엄마라 남편 없는 주말이 되면 어딜 가야 하나 하고 조금 고민한다.

보통은 집 근처 놀 수 있을 만한 곳으로 가는데, 가끔은 택시를 타고 동네를 벗어나기도 한다.


택시는 '영유아 동반자 바우처 택시'를 이용한다.

지역마다 바우처 택시 지원 요금 등이 조금씩 차이는 있는데 내가 사는 지역은 교통약자(장애인, 임산부, 노약자, 영유아) 들이 이용하는 바우처 택시는 한 달에 10만 원 지원, 택시 요금은 2천 원만 내면 지역 내에서 어디든지 간다.


그래서 수지랑 택시를 탈 일이 있으면 바우처 택시를 이용해서 비용에 큰 부담 없이 잘 다니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수지랑 바우처 택시를 타고 카페 나들이를 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우처 택시 어플에 계속 오류가 생겼고, 해결이 되지 않아서 이 날은 택시 타는 걸 포기하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내가 아이에게 "수지야, 택시가 안 잡히는데 버스 타고 갈까? 버스 타도 괜찮겠어?"라고 물어보니 오히려 더 좋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좋다고 했다.


그동안 늘 편하게 아빠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녔는데 이번엔 뚜벅이 엄마랑 함께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아날로그 일정이 시작됐다.


나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보단 기대와 설렘이 더 컸다.

아이와 같이 버스를 타는 게 생소한 경험이라, 아이가 어떤 반응일지도 궁금했고 나도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게 될지 궁금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기도 전에 '오늘 하는 이 경험은 분명히 특별하겠다' 는 직감이 들었다.

이 생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과정부터 특별했기 때문에.


평소 자가용을 타기 위해서는 지하주자창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버튼 한번 누르면 쉽게 갈 수 있다. 그런데 버스를 타려고 하니,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것보다 걸어서 정류장까지 가는 게 시간은 10배는 더 걸린 것 같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걸으며 받은 햇살,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나무를 보며 이쁘다고 감탄 한 말들, 길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우며 다람쥐를 생각하는 아이와의 시간은 10배 더 큰 행복감을 주었다.


아이와 같이 손을 잡고 걸으며 우리가 걷고 있는 지금 이 길을 생생하게 느낀 것 같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8분 정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그동안 수지는 아담하고 귀여운 노란색의 유치원 버스만 타다가, 파란색의 몸집이 큰 버스를 타려고 하니 살짝 긴장을 한 듯했다. 그래도 버스에 올라타서 자리에 앉으니 흥미로운 듯 이리저리 버스 안을 구경하며 재밌어했다.


버스 손잡이가 빨강, 파랑, 초록색으로 알록달록 했는데 그걸 보면서 색깔 맞추기 놀이도 하고, 버스 안에 있는 기구들의 색깔을 말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사람이 올라타는 입구 쪽에 있는 자리를 보며 "저기는 선생님이 앉는 자리야."

버스 기사님 뒷자리를 가리키며 "버스 아저씨 뒤에는 위험해서 앉으면 안 된데."

버스 카드 찍는 단말기를 보며 "저건 뭐야?"

카드를 찍고 탈 때 나는 소리 ‘감사합니다.’ ‘두 명입니다.’ ‘(노인분들이 카드를 찍으면 나는) 건강하세요’ 소리를 따라 말하며 웃기도 했다.


버스 안이 수지에게는 완전히 새롭고 재밌는 놀이공간이었다.

이 모든 걸 처음 본다는 듯한 흥미로운 표정과 호기심이 가득한 말들을 계속 조잘거렸다.

수지의 그 눈빛이 참 좋았고, 수지가 하는 모든 말이 듣기 좋았다.


아이는 버스를 타고 있는 동안 온몸으로 '새로워서 신기해! 재밌어!'라는 기운을 마구 뿜어냈다.

그 기운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아이의 시선으로 버스를 바라보니, 아주 세세하고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수지와 같이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버스 타는 걸 즐기고 있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 도착해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목적지인 카페까지 10분 정도 걸어야 했다.


수지는 늘 차를 타고 지났던 길을 직접 두 발로 걸어보았다. 차 안에서 보던 풍경과 직접 걸으며 보는 풍경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나는 수지가 차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던 곳을 직접 걸으며 두 눈으로 더 가까이서 보고, 발로 느껴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카페로 가는 길은 큰 대학병원 안을 가로질러 가야 했는데 병원 안엔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었고, 나무들도 많아서 수목원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길을 아이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조금 걷다가 수지는 다리가 아팠는지 힘들다고 해서 내가 업어주었다.


아이를 업고 카페까지 걸어가는 길이 이뻤다.

아이를 업고 가는 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이쁜 길을 같이 걸을 수 있다는 게 그저 행복했다.


버스를 타고, 걸어가는 게 아이도 불편했을 텐데 힘들다는 내색 없이 재밌다며 나를 따라와 주는 수지가 너무 고마워서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업었다.


내 등에 업힌 수지도 자기를 업어준 내가 고마운지, 내 오른쪽 어깨에 멘 가방끈이 내려가자 가방을 잡아서 내 어깨 위로 올려주고, 가방이 떨어지지 않게 작은 손으로 온 힘을 다해 붙잡아 주었다.


그 작은 행동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수지의 사랑스러운 행동이 내 몸과 마음에 힘을 줘서 아이를 번쩍 업고 잘 걸어갈 수 있었다.


이것도 우리가 같이 걷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차를 타고 편하게 카페 앞까지 왔다면 이런 경험은 못했을 것이다.


조금 불편해도 버스를 타고 걸어서 가다 보니 같이 걷는 이 길의 풍경을 더 오래 들여다볼 수 있었고, 이 길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마음으로 온전히 음미할 수 있었다.

 

차를 탔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고, 느끼지 못했을 마음이다.




디지털 시대는 속도와 효율성을 중요시한다.

뭐든지 편하고 빨라야 하는 시대다.


클릭 하나로 전 세계의 모든 소식을 알 수도 있고, 내가 궁금해하는 것도 클릭 한 번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유튜브도 숏츠가 생기면서 15분, 20분 영상도 1분으로 줄여서 보여주고, 숏츠 영상만 보다 보면 15분짜리 영상 하나 보는 게 힘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빠른 것에 무서운 속도로 중독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들이닥치는 세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가고 있다.


이렇게 뭐든 빠르고 짧고, 단축해야 하는 게 당연한듯한 시대에 천천히, 느리게 아날로그처럼 사는 건 왠지 미련해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아날로그는 디지털보다는 불편한 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디지털의 편리함을 나 또한 누구보다 잘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하나를 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고, 기다림이 필요한 아날로그 감성은 항상 그립다. 모든 게 빨라질수록 더 느려지고 싶은 아날로그를 원하는 생각이 내 마음 어딘가 깊숙한 곳에서 올라온다.  


디지털의 발달로 모든 걸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어서 편하긴 한데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공허한듯한 느낌이 있다. 그 텅 빈 것 같은 곳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찾다보면 아날로그로 그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말하는 아날로그는 ‘기다림, 느림, 여유, 여백’ 이런 것들이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걷고, 또 걷는 시간.


1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를 30분이 걸려서 가는 게 좀 느리고 불편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은 빠름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쉽게 놓치고 지나가는 여유, 여백, 기다림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며 빠르고 편리한 걸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이 세상에서 느낀 무언가의 공허함은 한 가지를 하기 위한 간절함, 기다림, 그리고 온 마음 다한 후에 얻어낸 소중한 성취감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고 노력하면서 빠르지 않아도, 천천히 이뤄지는 과정에서 오는 충만함과 만족. 이런 마음들이 모여 내 인생의 뿌리가 단단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한 아날로그의 여정이 더 좋았다.

이 날 아이와 교감하고 소통하고 같이 보고 느낀 것들이 참 좋았다.

모든 순간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카페에 가서 정원에 있는 돌과, 물, 나무를 보며 놀았다.


아이에게 장난감이 갖고 놀기 쉬운 디지털이라면, 자연은 아날로그다. 자기가 스스로 탐색하고, 관찰하고, 창조해야 하는 아날로그. 정해진 틀이 없는 자연 속에서 아이는 뭐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낚시 장난감은 없지만, 나뭇가지로 낚시 장난감을 만들고 물고기 장난감이 없지만, 돌이 물고기를 대신할 수 있다.

아이와 자연에서 보내는 이런 시간이 좋다.


이 날 아이와 나는 많이도 걸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다리가 조금 아프고 조금 힘들어도 지금 이 과정이 좋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을 아이도 나도 느끼고 있었다.


아이가 힘들다 하면 내가 안아서 갔고, 같이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를 구경하다 보니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지금 아이와 둘이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는 그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물론 차 운전이 필요하면 나도 언젠간 운전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장롱면허다)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이런 시간을 못 보낸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에서 진짜 말하고 싶은 건 단순히 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는 게 좋다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빠르게 흐르고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그대로 유지되는 가치를 잊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기다림의 가치, 간절함의 가치, 여유의 가치, 느림의 가치. 아날로그가 분명히 지닌 이 가치들을 잊지 않고 지키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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