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보낸 선물같은 시간
아이 하원을 하고 밖에서 한 시간 넘게 놀았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간식을 사고 나왔는데 수지가 갑자기 "어? 아빠다"라고 했다.
수지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정말 남편이 웃으며 우릴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 날 남편은 야간근무 하고 와서 집에서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난 반갑기도 했지만, 왜 나왔는지 의아해서 물었다.
"오빠, 자고 있을 시간인데 왜 나왔어?"
"너 생일 케이크 사려고 나왔어. 생일날 케이크 못 샀잖아."
이틀 전이 내 생일이었는데, 그날 남편은 저녁 근무를 갔고 어쩌다 보니 생일 케이크는 못 사고 지나갔다.
그래도 난 섭섭함은 전혀 없었다.
내 생일날 남편이 그 누구보다 제일 먼저 나에게 생일축하한다고 해줬고,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내 선물도 사줬다. 생일 케이크를 사서 축하하지 않아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그런데 남편은 내 생일 케이크를 사지 못한 게 내심 마음에 걸렸나 보다.
생일이 며칠 지났지만 생일 케이크를 사서 축하해주고 싶어 한 남편의 정성 어린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오빠, 케이크 안 사도 돼. 괜찮아!"
"진짜 괜찮아? 그럼 꽃이라도 사러 갈까? 나 꽃도 사려고 했는데."
나는 웃으며 꽃도 안 사도 된다고, 괜찮다고 했다.
남편은 ‘그래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를 챙기는 남편의 마음 만으로도 꽃과 케이크를 받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 마음이 꽃과 케이크를 받은 기쁨보다 더 컸다.
난 정말 괜찮았다.
아마 나 모르게 준비해서 내 눈앞에 깜짝 선물처럼 케이크와 꽃을 보여줬다면 난 정말 놀라며 좋아했을 거다. 그런데 남편의 계획이 다 들켜(?) 버렸고, 이렇게 길에서 우연처럼 만난 게 운명 같다는 생각을 했다.
케이크는 안 사도 되니, 저녁 장을 같이 보러 갈 운명.
케이크를 사려고 빵집으로 가던 남편은 발길을 돌려 우리와 같이 반찬가게로 걸어갔다. 반찬가게 가는 길을 산책 삼아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도 하고 저녁에 먹을 반찬들도 샀다. 그리고 마침 이 날, 아파트에 과일상회가 열리는 날이라 저렴한 값에 과일도 샀다.
남편과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남편이 저녁근무나, 야간근무를 하는 날엔 얼굴을 못 보거나, 저녁에만 잠깐 볼 수 있는데 이 날 같이 장도보고,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우리는 양손 가득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엔 반찬가게에서 사 온 맛있는 생선구이를 먹고, 넉넉히 사온 과일도 맛있게 먹었다.
아내의 생일케이크를 챙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자다 일어나서 케이크를 사러 나온 남편의 마음이 너무 따스했고, 생일케이크 대신 저녁에 먹을 반찬과 과일을 넉넉히 사고 한 테이블에 앉아 맛있는 저녁식사를 같이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이 날 저녁, 따스한 행복이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