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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수집가 Dec 04. 2024

붕어빵이 주는 행복의 맛

추울 땐 붕어빵 앞으로

아이 하원시키러 남편과 같이 갔던 날이다.

5시 반이 넘은 시간이라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졌고, 이 날은 한파특보로 몹시 추웠다. 너무 추우니 수지를 하원시키고 얼른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추워도 수지는 역시나 놀이터 발도장을 빼먹지 않았다.


유치원 뒤에 있는 놀이터에 가니, 평소에는 하원을 한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이 날은 너무 추워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수지는 친구들을 기다리는듯했다. 괜히 시소도 타고, 그물침대도 타면서 '친구들이 오나?' 하는 눈빛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수지에게 오늘은 너무 추워서 친구들이 빨리 집에 간 것 같다고, 우리도 집에 가자고 했다. 그 말에 수지는 아니라며 그렇게 말하지 말라며, 작은 손으로 날 통통 쳤다. 날이 춥지만 않았어도 좀 더 놀게 놔뒀을 것 같은데, 그냥 놀게 놔두기엔 너무 추워서 우리는 다시 여러 번 수지를 타이르며 재촉했다.


그때마다 수지는 화를 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놀이터에 아무도 오지 않는 걸 보고 결국엔 체념한 듯 아무 말 없이 우리 손을 잡았다.


수지에게 집에 가자고 꼬시면서 붕어빵 사 먹고 가자고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유치원 근처에 있는 붕어빵 가게로 향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주황빛의 붕어빵 가게는 춥고 어두운 거리에서 혼자 밝고 따뜻한 빛을 내고 있었다.

추워서 거리엔 사람이 없는데, 붕어빵 가게 앞에만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붕어빵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 그 모습이 왠지 포근하고 정겨웠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남편은 팥, 나와 수지는 슈크림을 좋아해서 팥붕어빵 3개, 슈크림빵 3개 해서 4천 원어치를 주문했다.

물가가 높고 경기가 안 좋은 요즘, 갓 구운 바삭하고 따뜻한 붕어빵 6개에 4천 원은 가성비 좋은 최고의 간식이다.


주문과 동시에 바로 만들어지다 보니, 기다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일반 식당에서 줄 서서 먹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붕어빵은 아무리 기다려도 힘들거나 싫지 않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붕어빵이 구워지는 걸 보는 것도 재밌기도 하고, 붕어빵 멍을 하다 보면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전문가인 사장님이 빠른 손놀림으로 붕어빵 기계를 능숙하게 다르고 척척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뭔가 안정적인 모습에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리고 붕어빵 가게 앞은 주변보다 공기가 조금 더 따뜻하다. 뜨거운 붕어빵 기계 때문에 그 열기가 주변으로도 퍼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붕어빵 가게 사장님은 이 추운 날, 반팔티를 입고 계셨다. 계속 열이 나는 기계 앞에 있어서 춥지 않으셨나 보다.


반팔티를 입은 무표정의 사장님은 표정은 무뚝뚝해 보였지만, 손님들에게 "감사합니다. 어떻게 드릴까요?" 하는 인사말엔 친절함이 묻어 있었다. 이 추운 날에도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사장님을 보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단단함과 강인함이 느껴져서 왠지 좋았다.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붕어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우리 앞에 손님들이 다 빠지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수지도 붕어빵 만드는 게 신기한지 자기도 보고 싶다며 안아달라고 해서, 나와 남편이 번갈아가며 수지를 안았다. 수지도 붕어빵 사장님이 척척 만드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렇게 한참 구경 하다 보니 어느새 새우리 붕어빵이 다 만들어졌고, 갓 구운 따끈한 붕어빵을 소중히 품에 안고 차에 탔다. 밖에서 기다리느라 조금 추웠는데, 붕어빵을 안고 있으니 꼭 손난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따뜻했다. 차에 타자마자 우리 가족은 붕어빵 하나씩 입에 물었다. 완전 겉바속촉의 맛있는 붕어빵이었다. 한입 베어 먹자마자 입안에 바삭함과 달콤함이 동시에 퍼지면서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역시 겨울엔 붕어빵이야. 진짜 맛있다!"


이 말 한마디를 하고 나서는 우리는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붕어빵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조용한 차 안은 우리 세 식구가 붕어빵 먹는 소리만으로 가득했다. 그 상황이 웃겨서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붕어빵만 먹었을까. 다 먹고 나서야 내가 말을 꺼냈다. 진짜 맛있다고.


따뜻한 붕어빵은 추워서 얼어있던 몸도 녹여주고, 바삭하고 달콤한 맛으로 마음도 따스하게 만들어 주었다.

조금 전까지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못 놀아 삐쳤던 수지도 붕어빵을 먹으며 다시 기분이 좋아져 해맑게 웃었다. 이 날 저녁, 붕어빵 하나로 우리 가족에게 따스한 행복이 슬며시 찾아왔다.


추운 날씨에 예민해지고 짜증이 날 것 같은 순간엔 얼른 붕어빵 가게 앞으로 가야겠다. 붕어빵이 만들어지는 걸 보며 기다리면 예민해졌던 마음도 스르르 녹아내리고, 붕어빵을 입에 넣는 순간 추위와 짜증은 눈 녹듯 사라지니까.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붕어빵.

겨울 한정판인 붕어빵이 주는 행복의 맛을 이번 겨울 아낌없이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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