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역할극 놀이
이번 주말에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랑 나만 있었다.
날이 너무 추워서 어디 멀리 가진 않고, 그냥 집에 있다가 수지가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집 앞 놀이터로 나갔다.
창밖으로 볼 때 햇살은 아주 따뜻해 보였는데, 밖으로 나가니 찬바람이 쌩쌩 불며 매우 추웠다. 바람이 내 피부를 스쳐가는 게 아니라 때리는듯한 느낌이었다. 차갑고 강한 바람에 맞으니 너무 추워서 나오자마자 얼른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지는 이 바람에도 꿋꿋이 놀이터에서 놀았다.
장갑을 끼고 그네를 타면 미끄럽다며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그네도 타고,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추워도 참 잘 놀았다.
그런 수지를 보고 있으니 잘 노는 게 기특하고 이쁘기도 했지만, 너무 추워서 오래 놀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수지에게 집에 가자고 계속 재촉했다. 그러나 수지는 내 말에 꿈쩍도 하지 않고 더 놀거라며 놀이터를 이리저리 누볐다.
수지의 의지가 너무 굳건해서, 집에 얼른 가야한다는 내 생각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추위에 발을 동동거리며 수지가 노는 걸 지켜봤다.
한참 혼자서 기구를 타며 놀던 수지가 미끄럼틀 밑에 작은 공간에 들어가더니 "엄마, 아이스크림 가게 놀이 하자"고 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 놀이만 하고 집에 가는 것으로 약속하고 놀이를 시작했다.
수지는 가게 사장님, 나는 손님이었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만 주문하다가, 나중에는 커피도 주문했다.
“안녕하세요. 저 따뜻한 커피 하나 주세요.”
“네~ 여기서 먹고 가나요? 집에 가서 먹나요?”
매장에서 먹는지, 테이크아웃인지 묻는 상세한 질문에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는데, 웃음을 참고 내가 답했다.
"집에 가서 먹을 거예요."
"아~ 네 알겠습니다. 봉지에 담아 드릴까요?"
수지의 이 질문에 결국 난 웃음이 빵 터져서 깔깔 웃으며 "네~담아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지는 커피 포장해주느라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한참 웃었다.
수지는 역할극 놀이를 하면 온 열정을 다해 진지하게 진심으로 한다.
그동안 엄마아빠랑 같이 카페를 갈 때마다 카페 종업원과 나누는 대화를 대화를 유심히 들었나 보다.
그동안 보고 들은걸 카페 놀이를 하면서 표현한다. 아이는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 같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흡수하는 아이의 엄청난 흡입력에 자주 감탄했는데, 이 날 놀이를 하면서도 그랬다.
늘 상황극 놀이에 진심인 수지는 놀이터에서 카페 놀이를 할 때도 끝까지 몰입하고 집중했다. 나는 처음에 대충 시간 때우려고 놀이를 시작했다가, 열정적인 수지에게 빠져서 어느순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카페 손님으로 내가 이런 반응을 하면 수지는 어떤 반응을 할까? 하며 궁금하기도 하고, 착한 손님 했다가 진상손님도 해본다. 그리고 수지의 반응을 보면 생각보다 꽤 차분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걸 보며 감탄하기도 한다. 이런 역할극 놀이를 통해서 아이의 성향을 알게되기도 하고, 내가 평소에 몰랐던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역할극 놀이는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인것 같기도 하다.
놀이터에 있는게 추워서 얼른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수지와 카페 놀이를 하다보니 진짜 내가 따뜻한 카페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잠시 추위를 잊기도 했다. 손님을 상냥하게 맞이해 주는 수지 사장님의 마음이 따뜻해서 참 기분 좋은 카페였다.
수지는 카페에 여러 명의 손님을 받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 나는 수지 카페에서 받은 사랑스럽고 다정한 마음을 가득 챙겨 따뜻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