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가 정성스럽게 깎아줄게
남편이 이제 셀프로 집에서 머리를 깎을 거라며 바리깡을 샀다. 매번 한두 달에 한 번은 꼭 이발을 해야 하는 남편을 보며, 남자들은 이렇게나 머리카락을 자주 깎아야 하는 게 번거롭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는 주변에 어느 미용실을 가도 남편 마음에 100% 만족스럽진 않아서, 늘 머리 깎을 때가 되면 어디 미용실을 가야 하나 고민한다.
남편이 고민할 때마다 나도 같이 고민됐다. 그리고 매번 같은 고민을 하는 것도 이걸 언제까지 고민해야 하나, 마음에 쏙 드는 미용실은 왜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 마음에 들었던 미용사는 다음에 가면 다른 미용실에 가고 없는 경우도 있었고,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마음에 들게 머리를 깎아주는 미용사가 있었는데, 지금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는 차를 타고 굳이 그 동네까지 가기가 귀찮다.
그러다 보니, 매번 남편 머리 깎을 시기가 다가오면 우리 부부는 항상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얼마 전 갑자기 남편이 자기가 스스로 깎겠다며 큰 결심을 내린 듯 말했다. 군대 있을 때, 자기가 사병들 머리 깎아주기도 하고 잘한다며. 스스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듯했다.
난 개인적으로, 이런 건 전문가에게 맡기고 돈 주고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긴 한데 남편은 달랐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해 보겠다는 남편을 굳이 말리진 않았다.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해봐야지.
그리고 주문한 바리깡이 왔고, 남편은 스스로 머리를 다듬고 잘랐다. 생각보다 꽤 잘(?) 자른 것 같았다. 많이 자른 게 아니라, 옆에 다듬고 앞머리도 자르고 했는데 꼼꼼한 성격의 남편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신경 써서 했을지가 느껴졌다.
그런데 아무리 꼼꼼한 남편이라도, 뒤통수에는 눈이 없다. 남편 머리 뒤를 보니 목과 연결되는 부분에 머리가 지저분했다. 그래서 내가 "오빠 머리뒤에 이상해. 잘라야 할 것 같아"라고 하니까 남편이 바로 나에게 "바리깡으로 깎아줘~"라고 했다.
난 바리깡을 손에 잡아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잠시 생각 후) "그래해볼게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렇지만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남의 머리를 자른다는 것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난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의 머리카락에 바리깡을 살짝 대고 '윙-' 소리를 내며 깎기 시작했다.
바리깡 소리가 요란하다 보니 이거 아픈 거 아닌가 싶어서 남편에게 "오빠 안 아파?" 하고 계속 물었다. 남편은 괜찮다고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요리조리 깎다 보니, 바리깡을 대면 깎이는 머리카락이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다.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신경 써서 남편 머리카락 라인을 정리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수지도 신기하게 보더니, "아빠 머리 이뻐"라고 했다. 수지가 이쁘다고 했으면 성공이다!
내가 볼 때도 만족스럽게 되었고, 나름 깔끔해진 머리를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남편도 이 날 계속 뒷머리를 만지며 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확인하는 듯했다. 그리고 깔끔해진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제 앞으로 어디 미용실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조금 줄어들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은 머리 매직약도 사서 집에서 해볼 거라고 했다. 남편은 반곱슬이어서, 머리가 꼭 파마한 것처럼 돼어 있는데 지금 머리 스타일도 멋있다. 그런데 이제 여름이고 땀도나고 습해서 인지 머리가 좀 부스스해지니 셀프로 매직을 해보겠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뭔가 열심히 찾아본 것 같다. 그리고 확신에 찬 얼굴과 목소리로 매직약을 사서 해보고, 내머리도 자기가 해주겠다고 했다. (돈을 받고 해주겠다고 ㅋㅋ) 그래서 일단 오빠 먼저 해보라고 했다. 오빠 머리 어떻게 되나 보고 나도 괜찮으면 하겠다고.
나도 반곱슬인 머리라 정기적으로 매직을 하러 미용실에 가야 하는데, 셀프 매직이 괜찮다면 해볼 의향이 있다.
처음엔 셀프로 하겠다는 남편에게 그래도 미용실 가는게 낫다라고 했지만, 자기가 해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본인이 해보고 미용실을 가든, 앞으로 자기가 하든 결정하면 되니까. 일단 뭐든 경험해보는건 나쁘지 않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배우는게 있고 얻는게 있다.
앞으로 우리 집이 미용실이 될 것 같다. 바리깡으로 남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경험이 내 일상에 하나의 새로움이 되어 재미를 주었는데, 앞으로 더 재밌어질 것 같다.
"이제 내가 정성스럽게 깎아줄게 사랑하는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