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며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간다
"엄마 아이씨도야."
어느 날 저녁에 수지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아이씨도라니? 혹시 수지가 욕을 말한 건가 싶어서 놀란 마음에 "수지야 뭐라고? 아이씨도?"라고 되물었다.
수지는 “응. 화장할 때 이렇게 바르는 거 아이씨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수지가 말한 아이씨도 가 ‘아이섀도’를 말한 것임을 알았다. 욕을 말한 게 아니라, 아이섀도 발음을 잘 못한 거라는 것을 알고 놀랐던 마음이 진정됐다.
그리고 수지에게 제대로 된 발음을 알려주었다.
"수지야, 그건 아이씨도 가 아니고 아. 이. 섀. 도 야"
그런데 수지는 내 말에 강력히 반발하며 “아니야 아이씨도 가 맞아!”라고 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 자기가 안다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강력하게 주장한다.
난 굳이 이 발음문제로 수지와 싸우진 않았다.
그래, 아이씨도 해라..
어쨌든 욕을 말한 건 아니라 다행이구나 하면서.
만 4살인 수지는 자기주장이 점점 강해진다.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해 줘도 끝까지 맞다고 주장한다.
이래서 ‘아이’인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이란 생각이 든다.
나도 어릴 땐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건 다 맞는 줄 알았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했다.참 철없고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모든 사람은 다 각자만의 생각이 있고, 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를 뿐이다.
‘내가 다 맞아’라는 생각이 아닌 ‘내가 틀릴 수도 있어’라는 생각을 하면 모든 면에서 훨씬 더 편안해진다. 나만 맞다는 생각이 '우물'이었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다'가 된 마음 같았다.
어떤 말을 들어도 받아들이고, 또 흘려보낼 수도 있는 마음이 조금 더 넓어졌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이 마음은 육아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아이를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무언가 더 바라거나 요구하는 마음대신 지켜보고 기다리며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 내가 낳은 내 아이지만, 아이는 나와 다른 엄연한 인격체다. 날이 갈수록 자기 생각이 더 커지고, 자기주장을 야무지게 하는 아이를 보면 나와 다른 '한 사람'이라는 것이 더 깊이 와닿는다.
때로는 내가 하는 말 다 잘 들었으면 참 편하겠다 싶다가도, 내 말에 뭐든 반대의견을 내는 수지를 보면 '참 많이 컸다' 싶어 귀엽기도 하고 잘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며 무조건 엄마인 내가 다 맞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살고 싶다. 나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면 4살 아이와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싸우고 나면 뭔가 남는 게 없고 허탈하다. 이것 때문에 이렇게 에너지 소비를 했다니 하면서 말이다.
육아에서든, 일상에서든 내가 맞다는 것을 좀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한결 더 수월해진다.
육아는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 이전엔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이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기본값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면에서 조금 더 편해졌다.
육아를 하면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 같다.
단순히 엄마가 된 것만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아니다. 지금껏 쌓아온 생각의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단단히 믿고 있던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여러 과정을 겪으며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굳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워지는 나를 보는 건 너무나 즐겁다.
아이가 커갈수록 나도 점점 더 깊고 너그러운 '어른'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