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 절영해안산책로, 75 광장 그리고 고신대 가는 길
오랜만에 연락이 된 친구들에게 부산에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 한 번 오겠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공수표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게 된다. 몇 주 전에 강남에서 만난 대학 친구 H양은 내가 당분간 부산에 있을 거라고 했더니 4월의 첫째 주말에 부산에 오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4월 첫째 주 주말까지는 아직 3주가 남은 이른 약속이기도 하여 온다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는데, 그녀가 정말 왔다. 다른 대학 친구 Y양과 함께 말이다.
부산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서툴지만 가이드 노릇을 하게 되는데 남들 다 가는 곳 말고 조금 더 특별한 곳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모처럼 여행을 온 친구들에게 호기롭게 예쁜 바다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향한 곳이 바로 영도 75 광장이다.
75 광장을 처음 알게 된 건 우연에 가까웠다. 부산으로 이사 와서 처음 회사로 출근하던 날, 나는 실수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게 되었다. 몇 정 거장을 가다 반대 방향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길을 건너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그때 75 광장의 바다를 처음 보게 되었다.
확 트인 바다 전경과 배가 있는 풍경은 해수욕장의 바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고, 이 바다 풍경을 친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75 광장 정류장에서 내려 바다로 향하니 바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과 해안 산책로 그리고 생각보다 더 멋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몇 번 차를 타고 지나가기만 했지 내려서 바다를 본 것은 처음인 나도 신이 날 만큼 아름다운 바다였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과 쌀쌀한 바람이 부는 흐린 날에는 흐린 날만의 바다 정취가 있었다.
나는 흐린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도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예쁜 바다를 볼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하자, 오히려 이런 날이 구경하기 좋다며 나를 위로한다.
바다를 실컷 본 다음 우리의 행선지는 고신대학교. 고신대학교가 목적지라기보다는 학교로 향하는 길에 만개한 벚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봄날은 짧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번보다는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
버스를 타고 벚꽃터널을 지나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이대로 참 좋다고. 그리고 내가 싫어하던 흐린 날이 아주 조금은 좋아질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