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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Mar 29. 2016

다시 찾은 감천문화마을

부산에서 한달 살기

내가 처음 감천문화마을을 찾은 때는 지난해 6월의 어느 날이다. 주말을 맞아 놀러 온 대학원 친구와 함께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2번 마을버스를 탔다. 꼬불꼬불 길을 따라 감천 문화마을로 가는 길은 줄곧 오르막길인데다 급커브 구간도 많기 때문에 버스에서는 손잡이를 꼭 잡아야 한다. 


그 날은 날씨가 정말 맑았고 하늘에 구름도 많아서 사진을 찍으면 예뻤지만 너무 더워서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골목골목 위치한 미션 장소들을 찾아다니느라 좁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가파른 산 길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색색깔의 집들, 가게의 벽화, 마을 구석구석에 위치한 심오한(?) 전시를 둘러보며 꽤 부지런히 다녔음에도, 그 날 나의 감천문화마을에 대한 인상은 덥다, 사람 많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니 힘들고 지친다 정도였다.



감천문화마을에 위치한 집들이 색색깔의 생기를 내뿜을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널린 빨래, 계단 위 화분 등 삶의 향기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지만 관광객들이 그들의 일상을 평온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간의 부산 여행을 시작한 지난주 월요일에 감천문화마을을 다시 찾았다. 

평일이고 아직 본격적인 나들이철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들이 훨씬 적었다. 가게의 예쁜 장식이나, 벽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물고기를 온전한 모습으로 찍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근 9개월 만에 다시 찾은 감천문화마을은 그새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좀 더 갖춘 것 같다. 없었던 가게들이 생겼고, 고래사 어묵도 입점해 있다. 



나는 관광지에서 카페를 가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관광지의 카페는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커피는 맛이 없으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광지에서 바가지 쓰지 않을 거야.', '속지 않을 거야.'하는 내 마음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방문 때는 길가에서 파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에 목을 축였는데, 이번에는 전망이 좋다고 쓰여있는 카페 한 곳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레몬차를 주문하고 계산을 하며 위층으로 올라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금세 머그잔을 내 손에 쥐어 주신다. 


조심해서 올라가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좁은 계단으로 옥상까지 오르니 바다와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이 나타난다.


퇴사 이후 2주 간을 부모님 댁에서 지내다가 다시 부산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혼자 있는 딸이 혹시라도 우울하게 지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이 옥상의 멋진 전망도 보여주고, 딸내미가 씩씩하게 잘 지낸다는 신고를 하기 위해 영상통화를 했다.


카페 옥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영상통화를 마치고 맛 본 레몬차는 나쁘지 않았다. 4천 원이면 관광지의 프리미엄을 붙였다고 보기도 힘들었고 전망까지 선물 받았으니 괜찮았다. 


어쩌면 내 마음이 한 고삐 풀린 걸 지도 몰랐다.

감천문화마을에서 걸어서 집까지 가는 동안 하늘이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오늘의 여행은 여기 까지란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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