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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램램 Jan 03. 2021

책을 꼭꼭 씹어서

책장 정리 1

책 욕심이 많다.

아마 아빠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본인 고등학교 때의 교과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1990년대의 독일어 사전, 일본어 사전, 백과사전까지 가지고 있다.

내가 출판사에서 알바할  참여했던 중학교 영문법 문제집까지 소장중이시다. (의미있다며)

엄마는 수많은 책들을 지긋지긋해했다. (특히 이사할 때)


어린 시절, 주말이면 아빠를 따라 동네 서점을 가곤 했다.

작은 서점의 좁은 복도에 빼곡히 꽂힌 책들을 한참 구경하고 

아빠도 나도, 책을  권씩 골라 집에 돌아오면 아빠는   장에 책을  날짜와 짧은 메모를 적었다.

나도 왠지 그게 멋져 보여 삐뚤빼뚤 날짜를 쓰곤 했다.


 추억 덕분인지  나에게 서점에 가는 , 책을 고르는 , 책을 사는 것은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책을 읽는 데까지는 잘 이어지지 않는 편이지만.



이사하면서 책을 많이 정리했고(그랬다고 생각했고)

장르별로 책장을 구분해 책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몇 개월 사이 책은 두 겹씩 꽂히고, 책 위로도 쌓이고, 비워둔 옆 칸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한 권 살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데, 쌓이고 쌓이면, 엄청난 무게와 부피가 된다.


새해를 맞아 책장을 비우겠다는 마음으로 중고로 판매할 책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는데,

옷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옷보다 더 고르기가 힘들었다.

안 읽은 책들은 언젠가 읽을 거라는 생각에,

읽고 나서 좋았던 책들은 언젠가 또 읽고 싶을 거라는 생각에, 책장에 두게 된다.


  ,

' 아 이 책은 놓아줘도 되겠다' 했던 책이 있었다.

몇 주 전에 홀린 듯 읽고, 좋았던 내용을 필사까지 했던 책이었다.

책의 내용이 생생하게 나를 관통해 갔고, 필사로도, 사진으로도 남겼으니

꼭 다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면 필사했던 구절을 찾아보면 될 것 같았다.


책을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책의 내용이 나에게 온전히 닿지 않았다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책의 메시지, 느낌, 기억까지 꼭꼭 씹어 삼키면

물리적으로 책을 곁에 두지 않아도 '나의 책'으로 남는다는 깨달음도 함께.


반대로 읽지도 않은 채 책꽂이에 머물러 있다면

'나의 ' 아니라 그냥 물리적인 공간만 함께하는 것뿐인  같다.

꼭꼭 씹어 읽은 책, 필사의 기록 <친애하고, 친애하는>


아직은 나와 물리적인 공간만 함께하고 있을 뿐인 수많은 책들.

꼭꼭 씹어 읽은 뒤에는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보내주어야겠다.


소심한 미니멀리스트의 팁!

우선 책장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고, 온전히 나의 책이 되지 않은 책들을 읽어가야겠다.
책을  놓아주는 법은 책을 꼭꼭 씹어 읽는 .
필사나 기록으로 책을 읽던 순간을 기억하면 미련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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