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메이커_우리 각자의 드레스

by 램램


2005년, 호주의 색깔이 기억난다. 창백한 하늘색에 찌를 듯 아픈 햇살, 압도적인 초록, 그리고 그와 대조적인 붉고 뜨거운 사막, 난생처음 호주에 도착했던 스물한살의 나는 1년간 호주의 색깔에 익숙해졌다. 모든 장면이 장엄하고, 아름답지만, 만지면 바스락거릴 것 같은 메마름이있다.


영화 <드레스메이커>는 이 메마른 호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틸리는 25년 전 살인 누명을 쓰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미혼모의 아이로 마을사람들 모두에게 무시받고, 괴롭힘 당하던 틸리는 화려한 모습으로 미싱과 함께 돌아온다. 파리에서 디자인을 배운 그녀가 보란 듯이 호주 깡촌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돌아왔다! 이 !@#$%들아!



틸리의 엄마는 ‘미친 몰리’라고 불리며 언덕 너머에 유폐되어 살고 있고, 그녀는 그런 엄마의 곁에 돌아와 미싱을 돌리며 옷을 만든다. 처음에는 틸리를 무시하던 마을 사람들은 틸리의 화려한 옷차림에 그녀를 찾아와 드레스를 주문한다. 그 덕분에 삭막한 마을은 화려하고 우아한 디자인의 드레스로 가득 찬다. 하지만 틸리의 실력과 함께 그녀를 인정하는 듯 했던 마을 사람들은 다시금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세우고, 등을 돌린다. 사랑하는 엄마도, 연인도 죽어버린 틸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뜨거운 복수를하고 마을을 떠난다.


마을 사람들이 틸리를 인정하게 된 것은, 거트루드라는 여성에게 드레스를 만들어 준 뒤 부터다. 마을 상점딸내미 거트루드는 촌스러운 안경에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짝사랑해 온 윌리엄이 유학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그를 유혹하기 위해 틸리를 찾아간다. 틸리는 거트루드를 그야말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고, 마을 파티에서 윌리엄과 거트루드는 사랑에 빠진다. 마법처럼 예뻐지는 일이란 왜 항상 여자들의 드라마가 될까? 신데렐라의 드레스처럼 여자들은 왜 드레스의 마법을 기다리고 있을까.


거트루드의 before - after


나는 어려서부터 예쁜 여자 아이로의 생존은 어렵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래서 대신 공부 잘하는 아이로의 길을 택했다. 예쁜 옷차림에 곱슬머리를 가진 여자아이를 동경하긴 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엄마는 항상 한 살 아래 남동생에게 물려줄 것을 고려한 옷과 신발을 사오셨기 때문에 나는 예쁜 빨간 구두 대신 뭉툭한 코의 가죽 신발을 신었고,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대신 무채색이나, 파란색의 셔츠를 입었다. 딱히 예쁜 이목구비도 아니었고, 늘씬한 몸도 가지지 못해서 스무살때까지 항상 캡모자를 쓰거나, 헐렁한 옷, 굵은 다리를 가릴 수 있는 긴 치마만 입고 다녔다.


그러다가 호주에 가게 되었다. 덥고, 건조한 나라 호주. 호주에서는 몸이 날씬하건 그렇지 않건 다들 시원하게 입고 다녔다. 아니 저런 팔뚝을 세상에 내놓다니! 아니 어떻게 저렇게 용감하게 비키니를 입을 수 있지? 싶은 여성들도 다들 편하게 입고 다녔다. 거기다 나는 호주에서 어린이 사이즈를 입어도 무방한 상대적으로 작은 인간이었다. 한국에서는 꽤나 큰 사이즈의 옷을 입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호주의 여자들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몸의 장점을 잘 드러내는 법을 알았다.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으로 나눠지는 대신, 어깨가 예쁜 사람, 허리 라인이 잘록한 사람, 엉덩이가 매력적인 사람이 있었다. 그런 몸을 보여주는 것이 그 곳의 여성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었고, 자연스러움이었다.

<드레스 메이커>의 거트루드는 틸리의 드레스를 입고 큰 가슴와 잘록한 허리를 드러내게 된다. 마을 여자들 모두 다들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깔, 어울리는 라인의 드레스를 입고 마을을 누빈다. 그녀들의 일상은 그대로지만, 자신에게 꼭 맞는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은 프랑스 사교계의 귀족들 못지않게 우아하고, 자신 있는 얼굴이다. (본 적은 없지만)


물론 예쁜 옷만이 그녀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맘에 드는 자신의 모습을 찾을 때, 그게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뿜어져나오는 자신감과 매력을 틸리가 찾아준 것이었다. 촌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라도, 그녀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녀들에게 꼭 맞는 옷이 된다.

호주에서 나는 처음으로 짧은 스커트를 입었고, 민소매 옷도 입었다. 팔뚝살이나, 굵은 종아리를 가리기 보다, 나에게 편한 옷을 입어도 된다는 걸 알았다. 남들이 평가하는 내 몸을 생각하기 보다 나를 위한 옷과 스타일을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속 마을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아름다움과 자신감을 찾아준 틸리가 다시금 살인자로 몰리자, 그녀를 평가하고, 배척하고 외면한다. 틸리는 그제서야 마을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화려한 복수를 하고, 멋진 뒷모습으로 마을을 떠난다.

(그녀의 복수는 너무나 스펙타클하고 멋있어서, 꼭 영화로 보기를 추천한다)




나는 나의 단점을 가리기 위한 옷 대신에, 내게 어울리는 옷, 나를 잘 보여주는 옷을 찾는 여정을 계속 하고있다. 그러면서도 옷 안에 있는 나를 누구보다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의 시선과 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내가 원하는 나 사이의 균형을 찾으며, 내 안에 있던 보석을 조금씩 발견해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에겐 꼭 맞는 각자의 드레스가 있다. 타인의 드레스에, 타인의 시선에 몸을 맞추고, 마음을 기울이기 보다, 나를 위한 드레스를 내 손으로 만들고, 찾아가는 과정속에서 어린시절 ‘예쁘지 않았던’ 나의 결핍이 위로 받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