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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Sep 20. 2020

목적 없던 청춘을 위한 유일한 위로

Long Goodbyes / CAMEL

때는 고2였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교복을 입고 신나라레코드가 있던 을지로로 향하던 동선은 내가 유일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 숨 쉴 수 있는 통로였다. 일산에서 출발해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서울의 대형 레코드점으로 향하던 시간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낯설고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홀로 길을 찾아 떠돌아 헤매던 그때의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날 시 토요일이었고 하굣길에 올라탄 서울행 열차는 오로지 음반 하나를 찾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 늘 그렇듯이 도망치듯,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편도행이길 바랐던 서울행 열차에서 내 동공은 분명 초점을 잃었을 것이다. 목적 없는 청춘을 위한 그날의 위로는 그 앨범을 찾아내는 것 말고는 없었으니까. 찾고자 하는 음반에 대한 정보는 오로지 곡명과 쟈켓사진뿐이었다. 잔상처럼 남아있는 앨범 사진이 내 발길을 레코드점으로 이끌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음악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된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때 나는 칼날처럼 차가웠지만 칼날에 베일만큼 뜨거웠다. 불안이 온 삶을 엄습하던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시간들은 내 목구멍과 심장을 피 터지게 조였고 스스로 움켜쥔 목구멍에서 바늘구멍만큼 새어 나오던 숨은 겨우 찾아낸 음악 하나로 그나마 시간을 연장한 셈이었다. 그때 알게 된 그 음악은 유일하게 나를 위로했고 그때 찾아낸 그 앨범 사진은 유일하게 나를 받아줬다. 도망칠 수 있는 용기조차 없던 내가 도망칠 수 있던 유일한 골목이 거기 있었다.


여전히 이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내 감정은 그때의 목적 없던 열여덟의 나를 소환한다. 감히 한 문장으로 서술할 수 없는 이 감정 앞에서 아직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음악을 듣는 일 말고는 없다.


Long Goodbyes / CAM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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