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의료원에서 간호사로 5년 정도 근무했다. 동기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유난히 재미있게 보낸 시간이었다. 밤근무가 끝나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놀러 나갔고, 하루 종일 밖을 쏘다니다가 다시 밤근무를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마음이 맞는 선후배 7명이 모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놀패(놀기 패밀리)’라고 불렀다.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공식적으로 여행을 다녔다. 계획하고 떠나는 모든 여행이 설레었고, 함께한 시간은 하나하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어느새 25년도 더 된 이야기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친구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곳에서 가족을 이루고,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며느리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내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던 시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때는 책임감이 없었으니까.
재작년, 우연히 혼자 한국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오랜만에 놀패 멤버들끼리 여행을 가자!” 모두들 반색했다. 기대와 설렘으로 여행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우리는 3박 4일 여수여행을 위해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걱정이 밀려왔다. 과연 언니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서로 변한 모습에 어색하지는 않을까? 혹시 못 알아볼까 봐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걱정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하나도 변하지 않은 얼굴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서로를 보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하나도 안 변했다!” “어머 언니들도 그래!” 그 말이 너무나도 기분 좋은 인사였다.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여전히 그때 그 시절처럼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사진을 찍으며 웃었다. 마치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 다시 20대였다.
이 여행이 주는 행복만으로도 앞으로 10년은 더 버틸 힘이 생긴 듯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진짜 친구란,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다시 만나면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한 사람들이라는 걸.
그리고, 그리운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