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쉬는 주말 아침, 남편이 감 농장에 가자고 했다. 홍시가 막 나오기 시작했다며, 차로 한 시간 거리라 멀지도 않다고, 금방 다녀올 수 있다고 설득했다.
‘굳이 가야 하나?’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이 시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마음은 이미 농장에 가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홍시를 잔뜩 사 올 생각에 설레 보이는 눈빛. 마지못해 따라나섰지만, 사실은 그 마음을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농장에는 예상대로 한국인과 중국인 손님이 많았다. 간판에는 큼지막한 한글로 “맛있는 감”이라고 적혀 있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유쾌한 호호 할머니가 능숙한 발음으로 “단감, 단감!”을 외쳤다. 이곳을 찾는 한국 손님들이 많았는지, 연습을 꽤 하신 듯했다. 그렇게 색이 곱고 흠이 없는 홍시만 엄선해서 네 박스를 사 들고 돌아서는 길,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많이도 샀네?”
“가족들이 좋아하는 거잖아.”
별말 아닌 대화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순간들이 좋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이 오가는.
집으로 가는 길에 시댁에 들러 한 상자를 드렸다. 이래저래 얻어먹은 게 많으니 이번엔 우리 차례였다.
시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홍시를 받아 드는 손길이 조심스럽고 따뜻했다. 감이 익어가는 것처럼, 관계도 그런 걸까. 너무 빨리 익으면 흐물흐물해지고, 너무 늦으면 딱딱해지고. 적당한 때에 알맞게 무르익는 것, 그게 쉽지가 않다.
작은집에도 들러 조용히 한 상자를 두고 돌아왔다.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이요, 그 사람이 곧 아는 사람이다. 좁은 세계다. 말인즉슨,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서로 가까웠다. 그만큼 더 자주 부딪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물러선 사이, 이제는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힘을 빼고,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이가 되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홍시 한 박스를 나누듯, 마음도 그렇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적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