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꿈자리가 사납다 “

by 램프지니

“꿈자리가 사납다.”

엄마의 센서가 발동하는 순간이다.


어릴 때부터 익숙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괜히 신호등을 한 번 더 확인하고 길을 건너고, 낯선 사람과 거리를 두고, 주변을 더 살피게 됐다.

그러면서도 피식 웃었다.

“믿지 않는다”라고 했으면서도 결국은 엄마의 말에 영향을 받고 조심히 행동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매사에 조심해라.”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고, 낯선 곳 가지 말고…”


그럴 거면 도대체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걸까?

하지만 안다. 이 모든 말은 조심하라는 당부이자,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이라는 걸.


그래서일까. “꿈자리가 사납다”라는 말을 들은 후 며칠 동안은 마치 보이지 않는 주문이 걸린 듯 조심하며 살았다. 그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 꿈이 안 맞네!” 하고 웃으며 넘어갔다.


반복해서 같은 말을 들을땐 체념한 듯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알았어, 엄마. 조심할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안심시키는 말이었다.


꿈자리가 사나운 것은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반영된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는 위험을 예고한다고 해석되지만, 심리적으로는 내면의 긴장을 나타낸다고 한다. 엄마의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꿈자리가 사나우니 그것이 현실화되는 걸 막고 싶음을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단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들을 수도, 조심하라는 당부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도 조심히 하고, 낯선 사람과 거리를 두고, 주변을 살핀다.

엄마가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 없이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꿈자리가 사납다”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방식이었다.


엄마의 걱정은 내게 경계심을 심어주었고, 덕분에 나는 위험을 피해 가며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미신’이라며 가볍게 넘기는 것들 속에서 사랑과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를 발견하곤 한다.


엄마의 꿈자리가 하루를 좌우하지는 않더라도, 그 말 한마디가 내 행동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조심성이 내 삶을 지켜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엄마 없이도 조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려 본다.


“알았어, 엄마. 조심할게.”

keyword